
연필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홍성림 옮김, 지호, 1997
저자는 아주 커다란 돋보기를 들고 연필이라는 인공물(디자인의 결과물)의 역사를 살핌과 동시에 문화/사회적으로 벌어진 현상들을 치밀하게 기록해냈다.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공학자인 저자의 특성이 반영되어, 그 속에서 '기술'의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렇다고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볼때, 연필을 만들고 개선해 나가느라 고민했을 공학자들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므로. (6각형 형태의 연필이 최고라는 결론을 얻기까지 연구를 거듭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물론 두툼한 책의 두께가 말해주듯,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기록된 감이 없지 않다.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연필'을 주제로 하는, 무려 500페이지 분량의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더 놀라울런지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모든 부분을 읽어내려가야 하는것은 아니니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게다가 책장은 놀랄만큼 쉽게 넘어간다. (그것이 저자의 장점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오랜시간 생명력을 간직한 '연필' 이라는 사물에 얽인 이 이야기는 연필과 누구보다 지독히도 깊은 인연을 간직한 디자이너들에게 충분히 유쾌한 야사(野史)를 읽는듯한 재미와 동시에, 우리의 일상에 자리잡고 있는 무수히 많은 '평범한' 물건들을 다시 한 번 주의깊게 살펴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추천: 이성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