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내용을 정리한 정도입니다. ^^ 쓰다가 궁금한 점이 생긴건 푸른 색으로 썼습니다.
'건축가 없는 건축'을 통해 보는 버내큘러 디자인 - 정리 세번째
버나드 루도프스키의
<건축가 없는 건축>
서양사에서 보면 건축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르네상스 이후이다. 건축가가 직접 집을 짓지 않고 집을 계획해서 지시하기 위해서는<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건축가가 등장한다는 것은 곧, 설계도가 등장했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설계도는 투시, 원근과 같은 개념이 발명된 이후에 나오게 된다. 전체 건축의 역사에서 건축가가 분리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이 책은 바로 건축가가 생기기 이전의 건축들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버내큘러’란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주제, 키워드는 어떤 텍스트를 이해하는 지적인 툴이 될 수 있는데, 우리는 ‘버내큘러’를 통해서 현대 디자인을 알 수 있다.
‘버내큘러’의 눈(관점)으로 현대디자인을 보면, 디자인을 보는 또 다른 기준이 생기고, 현대 디자인이 전혀 다르게 읽힐 수 도 있다는 것이다.
1) 버내큘러
디자인 (Vernacular Design) - 1차적 의미
주체로 보면 민중의 디자인, 지역을 보면 토속적인 지역적인 디자인, 무명의 디자인(Anonymous Design), 아마추어/비전문가의 디자인, 즉 디자이너가 디자인하지 않은 디자인.
2) 디자인
사와 버내큘러
– 디자인 사에서 버내큘러가 의미하는 것은 계속 달라져 왔다. .
- 전통적인 버내큘러 : 과거에 민중들에 의한 디자인
- 모던 /컴템퍼러리 버내큘러 : 한국의 찌라시나 간판 등. 현대에서 비전문가들이 만든 것들.
- 전유된 버내큘러 : 프로가 일부러 아마추어적으로 흉내 내는 것. 아마추어의 스타일이 주는 새로움을 가져옴.
3) 한국 디자인사와 버내큘러 - 2)에서 보았던 것을 한국 디자인으로 좁혀보면 어떨까?
버내큘러는 비전문가에 의한 디자인이지만 전체에서 숫자로만 보면 오히려 ‘주류’일 수도 있다.
- 전통적인 디자인: ‘한국적인 디자인’ : 즉 전통적인 유물을 말하는 데 이게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인이 될 수 있을까? 란 문제제기. 그건 단지 우리의 과거 일 뿐, 현재는 아니므로 한국 디자인사와 동일시 해서는 안된다.
- 근대화와 버내큘러 : 제도권(전문가)의 기준으로 보면 한국 디자인의 시작은 1960-70년대이지만, 민중의 기준으로 보면 19세기 말부터 디자인이 있을 수 있다.
- 그리고 역시 전문가들이 버내큘러 디자인을 베끼려 하는 부분이 있다.
(궁금한 점: 전문가들이 버내큘러의 다듬어지지 않은 면, 참신하게 느껴지는 면을 가져오는 게 키치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니면 같은 것일까?)
한국 디자인사와 버내큘러를 보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과연, 무엇을 근대디자인의 시작으로 볼 것인가?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역사는 달라진다.
옛날부터 있던 물건 + (서양문물이 들어온) 이후 일본, 서양물건 = 이 두 가지가 결합해서 나온 물건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고무신이 될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엽, 특히 한국전쟁 당시에 민중들이 미 군수품을 개조해서 만든 매우 독창적인 디자인의 생활용품들이 있다. 수류탄으로 만든 등잔이랄지, 미군들이 먹고 버린 깡통으로 만든 파리 잡는 깡통과 같은 물건들. 버내큘러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들도 바로 근대 디자인 사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생존 형 디자인, survival design으로서, 전통적, 민중적 디자인 감각이 발휘된 마지막 불꽃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한국에서 제도권 (전문적)디자인은 근대화는 곧 서구화였고, 당시엔 우리가 자체적이고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기 보다 모방이 거의 전부였다. 다시 말해 공식이고 주류라는 것이 모방을 오랫동안 주요한 방법으로 써왔던 것이다.
반면 비제도권인 버내큘러 디자인은, 역시 서구디자인을 베끼거나 또는 주류디자인을 베끼거나, 아니면 자생적으로 커왔다.
무엇보다도 제도권-주류, 비전문가가 커버하는 부분이 적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동네(간판, 대문, 주차장 등)까지 직업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결국 이런 비제도권 디자인의 수준을 높이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4) 디자인의
역사성
전통은 열등, 현대는 우월하다는 견해에선 토속건축을 발견할 수 없다. 현대는 과거보다 우월하다는 건 서구 근대의 독특한 사고방식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언제나 이런 식으로 생각하진 않았다.디자인에서도 과거는 현재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모더니즘이 우월하다고 생각해왔다.또 이런 과거와 현대를 나누는 관점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우월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버내큘러는 디자인이 아니다. 모더니스트들에게 있어 민중은 그저 전문적인 것에 대해선 모르는 사용자일 뿐이고, 디자인의 결정권은 없다. 그냥 디자이너들이 만들어주는 것을 쓰면 되는 것이다. 모더니즘은 버내큘러의 권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이건 서구가 제3세계를 보는 눈과도 통한다. 서구를 보편적인 것으로, 제3세계를
특수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
한국은? 당연히 제3세계에 속한다.
서구는 한국이 모던 컬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전제로 깔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결국 서구에서 모던 한국디자인을 보는 눈은, 이건 <민속 디자인>이구나.. 라는 것이다. 아름답지만, 옛날 것이구나…라는 생각. 하지만 우린 이런 구조를 모른 채,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을 정확히 보지 못한 채, 한국적인 것(=민속적인 것)이 세계적인 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아름다워도, 서구에선 그것을 <디자인>이 아닌 <민속>으로 판단한다는 것.
이는 한복이 아직도 <패션>이 되지 못한 이유다.남자 양복이 ‘민속 의상’의 수준을 넘어 패션이 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무엇일까?
한 나라 문화의 특징이 들어있으면서도 민속적인 수준을 넘을 수 있는 디자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 잘 모르겠지만 보는 입장에 따라 키치와 버내큘러는 부합되는 점이 있을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두개의 개념 모두 비전문적인 관점에서는 일치하지만
키치는 대중적이 관점인 반면 버내큘러는 지역적인 관점이기도 합니다.
몰르는 키치의 대중성(비전문성)의 반대적 의미가 기능주의적인 전문성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기에 그런 버내큘러적인 것들 중 일부 합리적이다 생각되는 요소들을
전문적인 영역으로 가져오는 경우는 키치적 측면을 제거하는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몰르는 키치적인 것이 산업적이고 상업적인 것들이라고 지적한 점을 볼때
만약 버내큘러적인 요소들을 상업적이고 소비적인 용도로 가져올 경우는
키치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도 키치의 개념이 마구 헷갈립니다. 몰르가 누차 강조하는 것이
키치란 다양한 것들이 축적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얘기하는 점을 보면
인간과 사물이 맺는 대부분의 현상들은 키치의 범주를 벗어나지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무질서로 나아가는 엔트로피 법칙처럼
키치도 그렇게 우리 일상에 축적되어 나가는 것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진 기능주의적 태도는 그런 키치에 대한 반발의 측면이라 여겨집니다.
좀더 전문적이고 기능적으로 나아가려는 디자이너들의 노고들. 정말 중요합니다.
몰르가 지적했듯이 순수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기능적 태도는 중요하지만 실현은 불가능합니다.
이번에 키치의 윤리학적인 측면(인간적인 측면)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의 흐트러진 일상이 훨씬더 합리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닌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두번째 질문에 대한 사견)
그냥 급하지 않게 현실을 인정하고 또 현실을 극복하면서 우리것을 찾아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진영이 원더걸스를 미국에 꽂고, 한류가 뻗어나가듯
내부에서부터 우리자신의 모습을 단단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