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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디자인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단어는 뭘까? 일단,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 다음으로는 타입, 스타일, 예술, 문제(problem)같은 단어가 자주 튀어나온다. 리서치 주제에 따라 키워드가 다르기 때문에 뭐 하나를 2위로 낙점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거의 모든 리서치 페이퍼에 한두번씩은 꼭 등장하는 감초같은 단어가 있으니, 이는 다름아닌 '위키피디아'다. 위키피디아는 컴퓨터 앞에 앉은 세상 모든 학생들이 3초만에 접근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백과사전이다. 언제나 '시간이 없는' 학생들은 이 간편한 백과사전에 의존해서 자료를 얻는데에 익숙하다. 한국에서도 위키백과를 많이 쓰는지는 모르겠다. 시험해본 결과, 위키피디아 영문판은 한글판과 비교가 안될만큼 정보의 양이 방대하다. 거의 모든 디자인 학술 용어를 커버할 정도다.
위키피디아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따로 없는 '생산소비주의' 상황에서 탄생한 제품 및 서비스 중 단연 가장 덩치가 큰 것이다. 단지 덩치만 큰게 아니다. 재크와 콩나무에 나오는 둔탁하고 포악한 거인과는 다르게 위키피디아는 매우 날렵하고 유기적이며 거기에 좋은 의지까지 갖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위키피디아를 절대 신용하지 않는다. 듣도 보도 못한 잡지식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위키피디아가 사회와 맺은 일종의 계약인 셈이다. 모든 이들로부터 정보를 무한정 빨아들이는 대신 학술적 신용가치는 얼마간 포기해야 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가입하면 다음과 같은 메세지가 뜬다.
"어서 오세요. 마음놓고 편집하세요. — 거의 모든 페이지를 누구나 고쳐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담하게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틀린 부분, 나아져야 할 부분을 찾아서 고쳐주세요. 오탈자, 문법, 정보를 직접 수정하실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의 한국어판인 위키백과에는 이런 소개글이 올라있다.
"보통 위키백과에 방문하는 100명 중의 1명 정도는 적극적으로 편집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위키백과에 방문한 사람은 누구나 글을 고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위키백과가 수많은 여러 사람의 기여로 성장하는 데에 큰 원동력이 됩니다."
자. 그럼 한번 직접 나서서 그 '기여'라는걸 한번 해보자. 뭐가 좋을까. 한글 위키백과에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를 찾아봤다. 오, 맙소사. 첫방에 애매한 정보를 찾아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약 1450년에 금속 활판 인쇄술을 발명한 독일의 금 세공업자다" 라고 나와있다. 내가 알기론 1450년이 아니라 1440년 경이다. (물론 확신할 수 없다) 영문 위키피디아를 찾아봤더니 대략 1439년이라고 나온다. (물론 이것도 믿을 수 없다) 아무리 정확한 시기가 아니라 해도 10년차이는 너무하다 싶어서 '약 1450년'을 '약 1440년 경'으로 바꿔서 저장했다. 과감히 편집하라는 위키피디아의 과감한 바램을 과감히 받들었다. 지금 당신 옆에 컴퓨터가 있다면 위키백과에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를 찾아보라. 금속 활판 인쇄술 발명시기가 "약 1440년 경"이라고 써있다면 당신은 나의 따뜻한 (그러나 신뢰도는 떨어지는) 손길을 느낀 셈이다. 만약 다르게 적혀 있다면 다른 누군가가 또 나서서 고친게다.
요즘 인터넷은 마치 조립식 합판으로 만든 화장실 칸막이와 같다. 정보는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고 나는 매일같이 그 지식이 주는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확실히 믿고 기대기는 무리다. 이런 현상은 단지 지식정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주된 목적인 '온라인 사회활동(Online Social Networking)'도 이리저리 뒤섞이기 시작한지 오래다. 한때 야후와 경쟁하며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 1세대로 꼽히던 '네띠앙'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건이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자료를 올리고 정보를 나누던 공간이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출 수 있다는 사실은 인터넷 왕국 시민들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으리라. 예전에 일본에 사는 친한 형이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다. '내가 발을 딛고 사는 땅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니 세상에 확고히 의지할 수 있는것 따위는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네띠앙 사건같은 극단적인 '재앙'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예고도 없이 커뮤니티 서비스를 없에버리는 그런 참사는 아마 다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는건 아니다. 인터넷 사회활동은 다른 누군가가 창조한, 다른 누군가가 얼마든지 새로 창조하고 편의에 따라 없엘 수도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모래성과 다를게 없다. 해가 지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한때 태양아래 흥겹기 짝이 없었던 왕국은 쓸쓸히 파도에 밀려 사라진다. 아무리 인기있고 활발하게 돌아가던 온라인 커뮤니티라 할지라도 그 옆에 다른 참신한 새 커뮤니티가 생기면 구성원은 어쩔 수 없이 빠져나가게 되어있다. 이익을 노리는 여러 회사들은 이 돈안드는 장사에 뛰어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결과 지금 인터넷 사회활동은 완전 뒤죽박죽이다. 가만히 보면 디자이너들은 이글루스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것 같다. 블로그 스킨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불과10년 전만해도 세상 사람들 모두가 프리챌에서 노는 것 같았다. 그리고 5년 전에는 싸이월드를 안하면 따돌림 당할 정도였다. (지금도 얼마간 그러하다) 여러 사람들과 골고루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네이버, 다음, 야후, 파란, 구글, 이글루스, 드림위즈, 페이스북, 블로거, 마이스페이스, 윈도우즈 라이브 등 수십개의 가입형 서비스를 방문해야 하고 태터툴즈, 티스토리, 제로보드, 무버블타입, 워드프레스 등으로 만든 설치형 블로그도 일일히 체크해주셔야 한다. 내가 아는 것만 이렇다. 이쯤되면 즐겨찾기만 클릭하기에도 바쁘다.
예전에, 그러니까 약 20년 전에는 인터넷이란 물건도 꽤 공식적인 냄새를 풍기는 미디어였던 적이 있었다. 나는 1996년에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통신'이란걸 해봤는데, 그때는 뭘 하려면 일단 '천리안'이라는 서비스에 접속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데이콤 천리안이 인터넷 그 자체일 수 밖에 없었다. 그 뒤로 '나우누리'가 하이텔, 천리안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견줄때까지만 해도 인터넷 커뮤니티는 불과 몇개 안되는 시스템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세상이었다. 아이디 하나, 4글자 비밀번호, 내가 자주 가는 동호회 몇개, 채팅방.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드넓은 인터넷을 십분 활용한다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 다음에는 뭐가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른다. 2년동안 군대에 있다 나왔을때 내 친구 이석구는 머리도 채 자라지 않은 나를 데리고 피씨방이란 곳엘 갔다. 이런이런. 2년 사이에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한메일넷에서 내 첫 이메일 계정을 텄다. 그리고, 그해 여름, 이석구와 나는 피씨방 정액권을 끊고 다음날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며 잠자리에 드는 초현실적인 삶을 살았다.
비약적으로 발달한 기술력에 힘입어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의 독점시대가 끝나고 포털 사이트의 시대와 개인 홈페이지, 설치형 블로그 시대를 차례로 거쳐 드디어 2009년, 이제 누구나 맘만 먹으면 블로그를 분양할 수 있는 세상이 펼쳐졌다. 그렇다. 일년에 20만원 정도를 웹호스팅에 투자하면 누구나 인터넷 쇼핑몰은 물론 '다음 카페'와 같은 게시판 서비스를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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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나는 다소 엉성한 한국 인터넷 역사 관측을 잠시 중단하고, 온라인 사회활동 및 지식활동의 구조변화에 휩쓸린 그래픽 디자인 사회가 스스로 어떤 위기를 초래했는지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다시 위키피디아로 돌아가보자. 말했듯이 학자들은 위키피디아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앉아 팔장을 끼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건 정말 웃긴 일처럼 들리기도 한다. 진지한 학자들의 생각은 한마디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믿을 수 없다'라는 것인데, 그 검증을 누가 할 수 있다는 건지가 너무 애매하다. 과학이나 의학에 대한 내용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소한 모두가 그렇게 인정하는) 전문가가 있다. 우리는 그 전문가를 '박사'라고 부른다. 박사님들이 여럿 모여서 오랜 시간동안 심각하게 연구하고 토론한 결과를 우리는 신뢰한다. 인간 사회에서 그 이상을 바랄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박사들이 참기름 쥐어짜듯이 지식을 짜내서 답을 낼 수 없는 분야가 의외로 많다는데 있다. 정치학, 사회학, 예술, 역사가 이런 분야에 속한다. 정치학 박사들이 피땀흘려 열심히 쌓아온 이론을 레이저 프린터로 출력해서 김정일 앞에 가져다놔봤자 그건 화장실 휴지로도 못쓰는 쓰레기일 뿐이다. 누가 열심히 조사해서 구텐베르크가 1450년에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결론지어도 내 손짓하나에 무려 10년이 당겨질 수 있는게 역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정보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약숫물 담아가듯이 퍼간다. 이런 상황에서 옳은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인터넷에서 누가 지식을 검증하고 누가 검증받는 것인가. 학위나 자격증으로 차별화되지 않는 세상에서 결국 사람이 몰리는 곳은 공식적인 모양새를 갖춘 쪽이다. 매끈하게 혹은 심각하게 외형을 단장한 웹사이트만이 신뢰를 받고 주류로 올라설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자동차 사고가 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인터넷 경쟁에서는 디자인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 인터넷에서는 디자인이 곧 권력이다.
조립식 화장실 칸막이와 같은 인터넷에서 수많은 사업체와 개인은 어떻게든지 자신이 조금더 튼튼한 합판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다. 요즘 너도나도 뛰어드는 인터넷 쇼핑몰 사업은 얼마나 짧은 시간내에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얻느냐의 싸움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쟁에서 이기면 주류 쇼핑몰이 되는거고 지면 쪽박차는거다. 그리고 이 신뢰도를 단기간에 확실히 높이기 위해 사람들은 지금까지 돈을 싸들고 '그래픽 디자이너'를 찾아왔다. 인터넷 활동에서 주류세력, 즉 기득권 세력이 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힘은 내용이 아닌 외형에서 나온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인터넷 세계에서만 목격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픽 디자인은 공신력을 상승시키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사회의 대다수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믿음이 가는 얼굴을 만들어주는 성형 전문가로서 보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여기까지 쓰고 잠깐 머리를 식히며 인터넷 쇼핑몰을 찾아가봤다. 나는 아마존 외에는 특별히 인터넷에서 물건을 구매해 본 적이 없는 초짜다. 물건을 구입한다는 가정하에 어떤 쇼핑몰을 선택할 것인가를 생각해봤다. 스무개 정도를 둘러본 후 심사숙고 끝에 내린 선택은 '쇼핑의 지혜 - CJmall'이다. 척 보기에 이정도면 신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가 이정도란 말이지? 일단, 이미지들이 고급스러워 보인다. 상품 사진은 최소한 형광등 불빛아래 찍은 사진들은 아닌게 분명하다. 가끔 멋진 일러스트레이션도 있고, 모델이 등장한다. 번쩍번쩍 플래쉬 애니메이션도 있다. 회사 로고도 깔끔하다. 이렇게 아무나 할 수 없는 효과를 써서 진지하게 홈페이지를 만든 회사라면 왠지 좋은 물건을 차려놓고 상냥한 점원이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것 같다.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시작하거나 현재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이트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건을 직접 볼 수 없는 인터넷 구매의 특성상 홈페이지는 쇼윈도우 그 이상이다. 그리고 지난 10여년간 그래픽 디자이너는 신뢰의 얼굴을 만들어주는 마이더스의 손으로 인정받아왔다. 90년대 중반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이른바 '웹디자인' 열풍은 '인터넷 신뢰 이미지 구축 사업'이 얼마나 많은 디자이너를 먹여 살렸는지를 시사한다. 그때는 플래쉬라는 프로그램만 잘 다루면 기본적인 생계유지가 가능했다. 거기에 FontFont에서 만든 좋은 산세리프 글꼴을 몇개 알고 균형이 잘 맞는 레이아웃까지 만들 수 있다면 웹디자이너라는 직함을 자랑스레 명함에 새기고 유능한 그래픽 디자이너로 어께에 힘주고 다닐 수 있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웹디자인의 봄날은 아주 짧게 지나갔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어떤 중학교 선생님이 결혼을 하시면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며 가보라고 했다. 가르치던 학생이 만들었다는 결혼 특집 홈페이지였다. 디자인이 꽤 무난했던걸로 기억한다. 화려한 사진과 밝은 문구가 있는 핑크빛 홈페이지. 그 중학생이 지금 어떻게 성장했을지 무척 궁금하다. 그런 것이다. 예전에 그래픽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었던 전문 업무를 지금은 중학생도 해낸다.
설상가상으로 웹디자인 프로그램은 날이 갈수록 다루기 쉽게 개발되는 중이다. 초기에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미지를 만들기는 쉬웠을망정, 그걸 웹사이트로 발전시키기는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런 상황마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기술은 점점 일반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웹디자이너는 드림위버로, 플래쉬 액션스크립트로, 급기야 자바스크립트와 PHP같은 프로그래머의 영역까지 도망쳐 나가며 끝까지 콧대를 세웠다. 그런데, 이제 그 마지막 방어선마저 무너져버렸다. 2008년 Xpress Engine이라는 오픈소스 프로그램이 발표되면서 단순히 설치형 블로그의 개념을 넘어 다양한 기능을 장착한 웹사이트를 일반인도 쉽게 구축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Xpress Engine 프로그램과 스킨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신뢰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스킨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온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여전히 마이더스의 손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마이더스의 손이 되는 (의외로 간단한) 비결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그 비결을 익힌 사람들은 인터넷 세상을 휘젓고 다니며 모든 것을 건드려 황금으로 도배를 하는 중이다. 당장 그만두지 못해! 그건 그래픽 디자이너가 할 일이라구! 아무리 외쳐봤자 사람들은 콧방귀도 안뀐다. 그렇다. 우리는 지난 십년간 배불리 먹던 밥그릇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셈이다.
지금 대학교를 다니는 디자인학과 학생들이여. 미안하다. 지키지 못했다. 웹디자인이 엄청난 숫자의 디자이너를 수용하던 상황이 쌍둥이 빌딩 무너지듯 하루아침에 무너지면서 수많은 그래픽 디자이너가 말도 안되는 디자인료를 받는 하청업자로 전락했다. 새로운 방향을 열심히 모색하며 분발한 일부 선구자들은 웹디자인을 과학적인 연구로 발전시켜 '유저인터페이스'라든지 '인터렉티브'와 같은 새로운 분야로 개척했다. 그러나, 이미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져버린 전국의 예술대학 디자인 학과가 매년 배출하는 인력은 인터렉티브가 아니라 인터렉티브 할아버지가 나서도 구제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디자인학과가 취업률이 높다는 소문이 돌기는 하지만 그거 결국 빛좋은 개살구 아닌가. 한국에서 취업해 일하는 후배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십중팔구 열악한 보수와 모순덩어리인 산업구조에 치를 떤다.
지금의 뒤죽박죽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자는 답을 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간절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인 해결방법이 따로 없다. 특효약을 내기에는 너무나 총체적인 문제다. '체질개선'은 공무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그래픽 디자인이야말로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아쉬움을 집어삼키고 냉정히 생각해보자. 어쩌면 우리 업계가 지난 10년간 누렸던 거대한 황금 밥그릇은 애초에 우리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은 모든이를 위한 모든이의 공간이다. 그곳에 디자이너가 이미지를 무기로 특정 회사와 개인에 공신력을 부여하는 일이 과연 대다수 전문가가 달라붙어야 할만한 디자이너 본연의 임무였을까?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쇼핑몰 웹사이트 제작도 분명 그래픽 디자이너가 기여할 수 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디자인이 학문으로서 인정받고 발전함에 따라, 분야의 전문성이 단순히 그래픽 생산하는 활동으로 제한되지 않고, 시각문화 전반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광범위한 연구로 진화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디자인은 잘생긴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보수를 받는 행위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는데 있다. 기업에 종속된 디자인 산업의 황금기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에 대한 사회 인식이 아직까지 한단계 올라서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대학과 대학원에 있다. 산업이 활기를 띄고 돌아가던 90년대 말에 뛰어난 인재와 자본이 몰려들었던 디자인 학교는 다음 세대 디자인에 대해 연구하고 답을 찾는 대신 디자인 학과를 직업양성소로 전환하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 그 결과 얻은 것은 '취업률이 높은 학과'라는 훈장이고, 잃은 것은 그래픽 디자인 및 디자인 교육이 나가야 할 미래의 청사진이다. 뭔가 큰 손해를 봤다고 느끼는건 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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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4 12:12:26 (*.234.154.2)
음...
세상이 바뀌는 속도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죠. 가랑이 찢어집니다.
그냥 세상의 속도에 몸을 맡기는 편이 편하지 않나요?
기술이라는 것은 계속 증명되기 마련입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막스베버)에서 학문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 있는 궁금증을
당연한 일상으로 바꿔주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가령 우리가 지하철을 타고 가지만 지하철의 기술적 문제는 크게 궁금하지 않습니다.
기술적 문제는 학문으로 이미 증명된 일상이니까요.
디자인. 마찬가지 아닐까요? 웹이든 그래픽프로그램이든 전문적 기술적 문제는 언제든 공개되고
일상화되기 마련입니다. 앞으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지 않을까요?
하나 더 인용하면, 빅터파파넥은 디자인을 잘하게 가르치는 법을 고민하면서
디자인을 많이 가르친다고 디자인을 잘하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디자인도 이제 기능으로서는 살아남기 힘들죠.
주로 언급되는 정치적 의식이든 사회적 의식이든 과학이든 인문이든 경제학이든 마케팅이든 ...
디자인에는 새로 장착될 무기가 필요합니다.(그 무기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학문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다면 의미가 상실됩니다.
아래에 이지원 선생이 쓰신 '왜 디자인 이론을 말하는가'를 다시 읽어 보게 됩니다. ^^
세상이 바뀌는 속도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죠. 가랑이 찢어집니다.
그냥 세상의 속도에 몸을 맡기는 편이 편하지 않나요?
기술이라는 것은 계속 증명되기 마련입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막스베버)에서 학문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 있는 궁금증을
당연한 일상으로 바꿔주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가령 우리가 지하철을 타고 가지만 지하철의 기술적 문제는 크게 궁금하지 않습니다.
기술적 문제는 학문으로 이미 증명된 일상이니까요.
디자인. 마찬가지 아닐까요? 웹이든 그래픽프로그램이든 전문적 기술적 문제는 언제든 공개되고
일상화되기 마련입니다. 앞으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지 않을까요?
하나 더 인용하면, 빅터파파넥은 디자인을 잘하게 가르치는 법을 고민하면서
디자인을 많이 가르친다고 디자인을 잘하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디자인도 이제 기능으로서는 살아남기 힘들죠.
주로 언급되는 정치적 의식이든 사회적 의식이든 과학이든 인문이든 경제학이든 마케팅이든 ...
디자인에는 새로 장착될 무기가 필요합니다.(그 무기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학문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다면 의미가 상실됩니다.
아래에 이지원 선생이 쓰신 '왜 디자인 이론을 말하는가'를 다시 읽어 보게 됩니다. ^^
2009.04.25 10:41:14 (*.171.0.246)
저는 고민하시는 여러분들이 어떻게 그것을 하나 하나 자신의 작업속에서 만들어가고 있는지 그 고민들을 좀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라면 자신들이 하고 있는 그 실체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요? 이 모임에 대한 비판이 아닙니다. 그냥 단순한 비판이나 비평이라면 사실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는 것 같고 여기 오시는 분들 젊으신 것 같은데 그냥 세상은 날 몰라줘 그러지말고 뭔가 좀 다른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현실을 좀더 바라보실려면 디자인 정글같은곳에 가면... 사실 그쪽에서도 여러분이 좋은 애기를 나눠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쪽이 어쩌면 한국 디자인의 현실일지도 모르니까요.
2009.04.26 07:39:33 (*.160.30.157)
좋은 생각 감사합니다. ^^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써서 올려도 좋겠군요.
예전에 포스터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기록해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작업일지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시시콜콜한 것까지 자세히 쓰다 보니까 생각을 정리하는데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됐었습니다. 너무 관념적인 토의로만 끌고갈게 아니라 실제 작업과 머릿속 생각을 연관지어서 이야기를 해보는게 더 생생하고 재밌는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지나가다' 님께서 중요한 점을 지적해 주신 것 같습니다. 한번만 지나가지 마시고 앞으로 자주 지나치시면서 좋은 생각 나눠주시길 기대합니다.
+ 디자인 정글... 예전에, 디자인 읽기가 생기기 전에, 의욕에 찬 글을 써서 정글 편집부에 보낸 적이 있었는데 아무런 답이 없어서 좌절했었더랬죠. 정글은 유명한 디자이너가 쓴 글을 읽거나 기초 지식 얻으며 상식을 넓히기는 좋으나, 보통 디자이너와 학생들이 자유롭고 소신있게 생각을 올리고 진지하게 의견을 나눌만한 공간은 못됩니다. 기본적으로 상업적인 성격을 띈 사이트에서 편집부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재단을 하는 한 민주적인 게시판이 되기는 힘들겠죠. 처음에 윤영기 선생님이 에미그레 잡지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던 진보적 성격의 정글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2009.04.26 14:28:39 (*.234.154.2)
저는 이곳이 나를 알아달라고 말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저의 생각과 의견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제 관심사는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등의 내용을 담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하신 분들의 비판과 비평은 차고 넘칠수 있지만(실제로 그런가요?)
알려지지 않은(가령 학생이나 기업의 흔해 빠진 디자이너) 사람들의 비판과 비평은
별로 ... 눈씻고 찾아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음... 그리고 현실을 좀더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이상을 꿈꾸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나요?
쓰다보니 무슨 변명이 되어버렸군요. ㅠㅠ
디자인정글,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여기계신 젊고 혈기왕성한 필진분들께서 디자인정글에서도 활동하셔도 좋을듯 하네요.
'저의 생각과 의견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제 관심사는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등의 내용을 담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하신 분들의 비판과 비평은 차고 넘칠수 있지만(실제로 그런가요?)
알려지지 않은(가령 학생이나 기업의 흔해 빠진 디자이너) 사람들의 비판과 비평은
별로 ... 눈씻고 찾아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음... 그리고 현실을 좀더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이상을 꿈꾸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나요?
쓰다보니 무슨 변명이 되어버렸군요. ㅠㅠ
디자인정글,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여기계신 젊고 혈기왕성한 필진분들께서 디자인정글에서도 활동하셔도 좋을듯 하네요.
2009.05.16 08:50:08 (*.142.39.153)
매끈하게 혹은 심각하게 외형을 단장한 웹사이트만이 신뢰를 받고 주류로 올라설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이 문구를 보니
어린왕자에서 어떤 천문학자가 민속의상을 입고 자기가 발견한 소행성을 발표할때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가
양복을 입고 동일한 발표를 하자 모두 그 사실을 믿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이 문구를 보니
어린왕자에서 어떤 천문학자가 민속의상을 입고 자기가 발견한 소행성을 발표할때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가
양복을 입고 동일한 발표를 하자 모두 그 사실을 믿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2009.05.16 21:01:20 (*.82.185.96)
박성완님 댓글을 읽으니 1995년에 힐러리 클린턴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전략] 힐러리는 자신의 이미지와 영향력이 빌 클린턴의 재선 여부에 크게 작용할거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언론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배우는 중이다. 워싱턴 타임즈는 힐러리가 남편이 신는 신발 레이스 스타일부터 (신발끈이 아니라 레이스) 조깅할때 허벅지를 어느정도 노출해야 할지까지 (제발 반바지는 참아줘) 일일이 결정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힐러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축했다. "나는 남편 신발 레이스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신문 일면을 장식하려면 내 헤어스타일을 바꾸는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후략]
Hillary Shores Up a Shaky Base for '96
by Bill Turque and Bob Cohn, Newsweek, 1995년 6월 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