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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보다 이념을 따른다
빌헬름 라이히의 '성경제학'적 시각으로 바라본 디자이너를 위한 노동조합 부제에 대한 시각
1.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보다 이념을 따른다.
우리는 정치적 선택의 순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투표를 하기 보다 이념에 따라서 선택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지난 대선을 꼽을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서민들에게 유리한 공약을 내 놓은 정당보다는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공약을 내건 정당에 표를 던졌다. 특정 정당을 지칭하기는 뭐하지만 극우성격을 갖는 정당과 진보적 성격을 갖는 정당 사이의 표차는 상식 이상으로 컸다. 우리는 왜 특정 정당에 이상하다 싶이 몰표를 던지거나 특정 정당만 지지하는가? 공약과 상관없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은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
이미 오래전에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연구한 내용이 있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직후인 1930년 독일에서 발행된 "파시즘의 대중심리(빌헬름 라이히)"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이용하여 이런 대중의 심리를 분석하였다. 당시 독일의 경제적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독일의 대중은 다른 정당을 제치고 민족사회주의 정당인 나치당을 선택 함으로써 민족주의와 권위주의를 더욱 옹호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통해 이 현상을 분석한 빌헬름 라이히는 "사람은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자신의 경제적 상황보다는 이념을 따른다"는 결론을 얻게된다.
(자세한 내용은 "파시즘의 대중심리/빌헬름 라이히"참고)
현대 디자인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자본주의를 통해 성장하고, 자본주의에 기생하여 그 생명력을 이어간다. 특히 광고 산업은 자본주의의 최 측근으로써 끈끈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국가들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신자유주의를 자신의 기본 이념으로 삼을수 밖에 없는 이유로 작용한다. 신자유주의는 대부분의 노동운동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이는 자유시장경제에 있어서 노동운동을 기업 경쟁력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숙주(신자유주의)에 기생(디자인)하는 생물은 자신의 생존 방침의 최우선을 자신의 숙주로 삼게 되는 것과 같다.
이렇듯 신자유주의를 자신의 이념으로 삼는 디자이너들에게서 '노동운동'을 숙주의 해가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결과를 갖는다. 이는 빌헬름 라이히가 이야기하는 성경제학에서 "사람들은 경제적가치보다 이념적 가치로서 경제적 구조를 형성하려는 성격이 두드러진다"고 하는 것과 같다. 디자이너에게 노동조합의 존재는 상당히 부정적인 이념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디자이너에게 자신의 척박한 경제환경 속에서도 노동조합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장기적으로 옳지 못한 방법이라고 판단내리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설사 '디자이너 노동조합'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 참여를 이끌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 디자이너들은 결국 자신의 이념을 극복 할 수 없는가?
빌헬름 라이히는 '파시즘'을 극복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극복 방법중 가장 중요한 것을 학습으로 꼽았는데 특정 이념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학습함으로써 좀 더 논리적 사고가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그 사례로 독일을 꼽을만 하다. 1900년도 초의 파시즘의 광신도들은 2009년 지금 가장 이성적인 국가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경험에 의한 반성이기도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상황을 파시즘에 대한 사전 학습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는 독일이 2차 대전이후 파시즘의 연구와 원인 분석에 가장 매진한 결과이다.
필자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원인이 재벌 시스템에 있다고 본다. 재벌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생한 특수한 집단으로 급속한 경제발전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재벌은 부르주아와는 다른 의미로 이 집단의 특수성은 영어권 사전에도 그 발음 그대로 '재벌'이라고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벌들의 권력은 워낙 막강하여 대한민국의 '치외법권'으로도 불리운다. 대한민국의 디자인 경제구조는 바로 이 재벌들의 시스템에 의존한다. 이는 디자이너들에게 자신의 숙주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연축한다. 특히 그들이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를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들이 따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숙주에 기생하는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
지금은 디자이너들에게는(혹은 그 누구에게도) 재벌 시스템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매일 같이 쏱아지는 쇼비니즘 광고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재벌들의 광고속에서 냉철하고 논리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중심으로 삼고자하는 이념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꼭 노동조합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이념을 의심하고 반성해 보지 않는다면, 맹목적인 추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무엇에서 기인하는지 알지 못한다."
2009/5/30
일산에 있는 커피숍에서...
김의래
일러두기
1. 이 글은 지금까지 디자이너를 위한 노동조합이 존재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성경제학'의 시각에서 서술하려고 하였습니다. 성경제학을 최초로 주장한 이는 빌헬름 라이히로 프로이트의 제자이기도합니다.
2. 이 글은 단편적 시각으로만 접근한 글입니다. 단 하나의 원인 분석으로 '디자이너를 위한 노동조합 부제'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글은 하나의 원인을 분석해 봄으로써 종합적인 시각에 도움이 되기 위함입니다.
2009.06.01 19:11:52
라이히의 이론으로 노조까지 아우르시는 시도 멋집니다^^ 라이히를 꼼꼼이 다시 읽을 필요성이 있는 시점이네요. 그러나 라이히의 성경제학으로 노조문제를 포괄하기에는 라이히의 '성'적 부분(프로이트를 잇는 부분)은 빠져있어 성경제학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 매커니즘과 대중심리가 어떻게 노조를 만들지 못하는 분위기, 혹은 정당투표로 이어지는가에 집중되어있는 것 같네요. 사실 라이히의 글은 파시즘이 종결된지 얼마되지 않아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오류도 많습니다. 왜 전쟁과 살육을 지지하는 나치를 대중들이 찍었는지를 경제적 요인보다 이념적 요인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이념적 요인조차 경제적 요인에 포섭당한 부분이 크지요. 그러기 위해선, 당대 독일이라는 국소적인 지형을 벗어나 유럽헤게모니를 따져본다던지, 특히 대공황에 대해서 면밀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한국 지형으로 끌어보자면, 이명박을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 이유가, 단지 그들이 대중과 미디어에 흔들렸거나, 이념적인 측면 보다는 경제적인 측면이 당연히 큽니다.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경제대통령을 자처했기 때문이죠. 이명박정권을 찍으면 나한테도 이득이 되겠구나라는 실리적 이유에서이구요, 하지만 결과가 어떻습니까? 님도 주지하셨다시피, 재벌에게로 돌아갔죠. 서민들을 위해 푼다던 돈. 그 많은 돈 실제로 풀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호주머니가 아닌 재벌, 혹은 상류층에게로 돌아간거죠.
그리고, 맥락은 틀리나, 이번 노무현씨 죽음과도 관련해보면, 전체주의적 모습은 그대로 투영됩니다. 모든 거리가 노란색 물결이었죠. 물론, 저도 개인적으로 그 스스로가 자살을 선택한 것에는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언제 그가 민주화의 영웅이된거죠? 그는 한때 양심적인 변호사였습니다. 그러나 팩트를 보죠. 그의 재임기간에 이라크 파병, FTA체결, 대추리 문제, 등등 신자유주의의 루트를 그래도 따랐습니다.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책임은 반드시 구분되어져야하는 것이죠. 그가 진짜 민중을 위한 지도자였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그의 재임중 어떤 분이 대추리에서 자결을 하자, 그가 뭐라그랬습니까. 그렇게해서 자기의 뜻을 알리는 시기는 끝났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실망스러웠죠. 다시 지금으로 돌아봐보죠. 진보진영은 물론이고 누구나가 그를 추모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탄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이게 바로 라이히가 우려했던 대중심리인겨죠. 객관적 사실의 추론으로서의 행동이 아닌, 전체적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이죠.
그리고, 재벌시스템..문제 많죠;; 하지만, 그렇게 된 까닭과 양태들도 살펴봐야하지 않을까요. 재벌시스템, 즉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모델 중 하나인데, 그렇지 않은 국가를 살펴보죠. 우리가 동경해마지 않는 북유럽 모델, 즉 케인즈시스템입니다. 국가가 재벌에 대한 규제가 심하고, 그 세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공공시설이나 복지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신자유주의, 즉 자본주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이며, 북유럽의 부를 충족시키는 근본적인 것은 제 3세계에 대한 착취였습니다. 그리고 북유럽도 빈부격차가 큰것은 똑같구요. 하지만, 한국이 북유럽 모델을 따르기만 한다고 해도 천만다행인거죠;;;
즉, 저도 님의 말씀처럼 신자유주의에 대해 더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동의하구요. 하지만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봐야한다는 점을 주지하고 싶네요..
그리고 이를 한국 지형으로 끌어보자면, 이명박을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 이유가, 단지 그들이 대중과 미디어에 흔들렸거나, 이념적인 측면 보다는 경제적인 측면이 당연히 큽니다.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경제대통령을 자처했기 때문이죠. 이명박정권을 찍으면 나한테도 이득이 되겠구나라는 실리적 이유에서이구요, 하지만 결과가 어떻습니까? 님도 주지하셨다시피, 재벌에게로 돌아갔죠. 서민들을 위해 푼다던 돈. 그 많은 돈 실제로 풀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호주머니가 아닌 재벌, 혹은 상류층에게로 돌아간거죠.
그리고, 맥락은 틀리나, 이번 노무현씨 죽음과도 관련해보면, 전체주의적 모습은 그대로 투영됩니다. 모든 거리가 노란색 물결이었죠. 물론, 저도 개인적으로 그 스스로가 자살을 선택한 것에는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언제 그가 민주화의 영웅이된거죠? 그는 한때 양심적인 변호사였습니다. 그러나 팩트를 보죠. 그의 재임기간에 이라크 파병, FTA체결, 대추리 문제, 등등 신자유주의의 루트를 그래도 따랐습니다.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책임은 반드시 구분되어져야하는 것이죠. 그가 진짜 민중을 위한 지도자였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그의 재임중 어떤 분이 대추리에서 자결을 하자, 그가 뭐라그랬습니까. 그렇게해서 자기의 뜻을 알리는 시기는 끝났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실망스러웠죠. 다시 지금으로 돌아봐보죠. 진보진영은 물론이고 누구나가 그를 추모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탄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이게 바로 라이히가 우려했던 대중심리인겨죠. 객관적 사실의 추론으로서의 행동이 아닌, 전체적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이죠.
그리고, 재벌시스템..문제 많죠;; 하지만, 그렇게 된 까닭과 양태들도 살펴봐야하지 않을까요. 재벌시스템, 즉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모델 중 하나인데, 그렇지 않은 국가를 살펴보죠. 우리가 동경해마지 않는 북유럽 모델, 즉 케인즈시스템입니다. 국가가 재벌에 대한 규제가 심하고, 그 세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공공시설이나 복지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신자유주의, 즉 자본주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이며, 북유럽의 부를 충족시키는 근본적인 것은 제 3세계에 대한 착취였습니다. 그리고 북유럽도 빈부격차가 큰것은 똑같구요. 하지만, 한국이 북유럽 모델을 따르기만 한다고 해도 천만다행인거죠;;;
즉, 저도 님의 말씀처럼 신자유주의에 대해 더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동의하구요. 하지만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봐야한다는 점을 주지하고 싶네요..
2009.06.02 12:09:40
냐옹님의 날카로운 시선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조목조목 의견을 달아주시니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우선 제 글에 전반적인 비평을 적어주셔서 '냐옹'님이 남겨주신 댓글의 문단별로 의견을 남기겠습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1 문단에 대한 의견
제가 라이히의 이론만으로 설명하려다 보니 차/포 모두 때고 글을 이어 간것 같습니다. 냐옹님의 의견처럼 당시의 유럽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글에서 라면 현재 북한의 상황과 일본, 중국과의 관계 등등 동북아시아와 미국이라는 무시못할 초 강대국까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직 그렇게 포괄적으로 아우르기에는 지식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2 문단에 대한 의견
이 문단의 의견에서는 일부분에서 반론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경제적 이유보다 좌파정권(저는 좌파정권으로 보지 않습니다만)에 대한 반발적 성향 혹은 실망으로 선택된 이유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모든 후보들이 경제 대통령을 자처 했습니다. 경제성장은 계속 되고 있으나 서민경제가 붕괴 했기 때문이었죠.
3 문단에 대한 의견
'냐옹'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의 분위기도 있겠지만 현 정권에 대한 반발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반발 작용이죠. 이전 정권에 대한 그리움 입니다. 현재 비상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현 정권의 행동이 분노와 반발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대중들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크게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죠.
4 문단에 대한 의견
이 부분에서도 일부 반론이 있습니다. 분명 현 유럽의 부는 제 3세계에 대한 착취가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합니다. 특히 북유럽 또한 그렇습니다. 하지만 북유럽의 시스템이 모두 케인즈 주의라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입니다. 케인즈주의와 사민주의가 혼재 되어 있죠. 분명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와는 큰 연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케인즈주의가 이야기하는 수정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어찌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다른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신자유주의로 승리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뿐이었지만 그곳도 이젠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분명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무너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몇몇 부분에 대한 반론이 있었지만 냐옹님의 의견에 전반적으로 동의합니다.
냐옹님이 말씀하신 데로 아직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제가 부족한 탓이기도 하고, 문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냐옹님 같은 분들의 날카로운 비평이 저를 반성하게 합니다. 항상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
2009.06.02 14:16:48
라이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디자인 노동조합이 신자유주의에 의해 구성되지 못했다는 의견에는 약간 물음표가 붙습니다.
경제구조, 사회구조, 정치구조에 의해 디자이너 노동조합까지 어우르는 것은 좋은 시도 같습니다.
지적하신대로 우리나라 디자인 자체가 지난 몇십년동안 산업에 기생해온 것은 사실입니다만,
디자이너 노동조합이 신자유주의 때문에 생기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것 같군요.
구조적 이유보다는 그냥 너무 바뻐서, 그런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거나 필요성이 없었던 거 아닐까요?
사실 현존하는 노동조합도 직업군별 노동조합은 별로 없습니다.
최근 조금 생겨나는 추세죠. 거의 사업장별 노동조합이 현재 노동조합 형태의 대세입니다.
금속노조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디자이너 노동조합은 구조적 문제에서 풀어갈 필요도 있지만,
좀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서 논의를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풀어내기에는 구조적의 문제는 너무 먼 경향이 있지 않을까요? 전 내공이 약해서...
근데 혹시 전 세계에 디자이너 노동조합 사례가 있나요?
***
저도 두분의 논의에 살짝 한발 걸치면,
노무현 죽음의 문제는 어떤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 보다는 저는 개인적 각성의 차원에서 봅니다.
노무현의 죽음에 보수, 진보진영 모두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일전에 글에서도 약간 의견을 밝혔지만 '경계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투영된
한 인격적 정치인의 투신에 반성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냐옹님의 말씀대로 노무현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신자유주의를 선택했고,
의래님의 말씀대로 국민은 노무현의 대안으로 이명박을 선택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 의미로서 거대한 애도 물결을 설명하기는 어려울듯 싶습니다.
가져다 붙히면 모두 양진영의 논리로 귀결되니까요.
저는 노무현이 양쪽 주류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비주류 노무현의 중간자적 삶과 소신이
선택을 강요받았던 거대한 비주류 국민의 공감을 끌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항상 선택을 강요받았던 비주류였고,
또 그안의 백성 또는 대다수의 국민들도 또한 선택을 강요당하는 비주류였으니까요.
이제 각성된 대중들은 좀 더 옳은 선택의 방향을 잡지 않을까 합니다.
(먼저 경향신문을 좀 봐야 할텐데... 크하하... 제가 좀 배고파서... ㅠㅠ)
우리가 이제야 노동조합을 거론하는 것도
디자인을 둘러싼 디자이너들의 환경에 대한 각성에서 시작되었듯이 방향 선택의 논리에서
자본, 사회의 구조적 논리보다는 좀더 실질적인 논리의 방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노동조합이 신자유주의에 의해 구성되지 못했다는 의견에는 약간 물음표가 붙습니다.
경제구조, 사회구조, 정치구조에 의해 디자이너 노동조합까지 어우르는 것은 좋은 시도 같습니다.
지적하신대로 우리나라 디자인 자체가 지난 몇십년동안 산업에 기생해온 것은 사실입니다만,
디자이너 노동조합이 신자유주의 때문에 생기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것 같군요.
구조적 이유보다는 그냥 너무 바뻐서, 그런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거나 필요성이 없었던 거 아닐까요?
사실 현존하는 노동조합도 직업군별 노동조합은 별로 없습니다.
최근 조금 생겨나는 추세죠. 거의 사업장별 노동조합이 현재 노동조합 형태의 대세입니다.
금속노조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디자이너 노동조합은 구조적 문제에서 풀어갈 필요도 있지만,
좀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서 논의를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풀어내기에는 구조적의 문제는 너무 먼 경향이 있지 않을까요? 전 내공이 약해서...
근데 혹시 전 세계에 디자이너 노동조합 사례가 있나요?
***
저도 두분의 논의에 살짝 한발 걸치면,
노무현 죽음의 문제는 어떤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 보다는 저는 개인적 각성의 차원에서 봅니다.
노무현의 죽음에 보수, 진보진영 모두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일전에 글에서도 약간 의견을 밝혔지만 '경계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투영된
한 인격적 정치인의 투신에 반성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냐옹님의 말씀대로 노무현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신자유주의를 선택했고,
의래님의 말씀대로 국민은 노무현의 대안으로 이명박을 선택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 의미로서 거대한 애도 물결을 설명하기는 어려울듯 싶습니다.
가져다 붙히면 모두 양진영의 논리로 귀결되니까요.
저는 노무현이 양쪽 주류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비주류 노무현의 중간자적 삶과 소신이
선택을 강요받았던 거대한 비주류 국민의 공감을 끌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항상 선택을 강요받았던 비주류였고,
또 그안의 백성 또는 대다수의 국민들도 또한 선택을 강요당하는 비주류였으니까요.
이제 각성된 대중들은 좀 더 옳은 선택의 방향을 잡지 않을까 합니다.
(먼저 경향신문을 좀 봐야 할텐데... 크하하... 제가 좀 배고파서... ㅠㅠ)
우리가 이제야 노동조합을 거론하는 것도
디자인을 둘러싼 디자이너들의 환경에 대한 각성에서 시작되었듯이 방향 선택의 논리에서
자본, 사회의 구조적 논리보다는 좀더 실질적인 논리의 방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2009.06.04 01:44:02
윤여경씨의 생각대로 이 사태에서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는 것이라면, 즉 그 죽음 자체의 처연함과 쓸쓸함을 추도하는 것..뭐 이런것 말이죠. 정말 대찬성입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는거죠. 앞에서 김의래씨가 지적했듯, 저도 처음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안티성격으로다가 이번 국면이 진행되는 것에 약간 기대를 걸었습니다. 노무현의 죽음의 파장이, 현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터져나오는 것 말이죠. 대표적인 케이스가 작년 촛불이었죠. >_<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설레입니다. 여튼, 허나 지금의 상황은 그와는 반대처럼 보입니다. 뭐랄까 박정희가 죽었을 때의 모습도 스쳐 지나가구요, 오늘 동네 입구에 커다란 현수막이 4개정도 걸렸더군요. 제가 의아했던 부분은 용산참사 일어났을때도 꿈쩍하지 않던 사람들. 즉, 정말 이명박 정권에 대해 저항할 필요가 있었던 시점에 냉소적이기까지 했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어째서, 그때 그들은 지금처럼 울부짖지않았을까요. 왜 얼마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규탄 시위때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던걸까요.
저는 그 부분이 너무 마음아프다는거죠. 노무현의 죽음의 파장이 이명박정권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도, 달갑지 않은 게 그때문이구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딱, 용산에서 죽어가던 사람들만큼 슬펐던 것도 사실입니다.
결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윤여경씨의 시선으로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ㅅ;
저는 그 부분이 너무 마음아프다는거죠. 노무현의 죽음의 파장이 이명박정권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도, 달갑지 않은 게 그때문이구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딱, 용산에서 죽어가던 사람들만큼 슬펐던 것도 사실입니다.
결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윤여경씨의 시선으로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