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에서 한 음악 프로그램을 봤다. 고품격 음악방송을 표방하는 '음악여행 라라라'. 설비가 잘된 스튜디오에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진행자들과 가벼운 인터뷰를 하고 다시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식이었다. 나는 우연히 프로그램 첫회를 보게 됐는데 '이승열'이라는 가수가 나와서 모던록을 열창했다. 뭣보다 한 가수의 노래 몇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초대 가수 선정 기준도 나쁘지 않은 듯 했다. 일반 가요프로그램에서 만나기 힘든 가수를 무대에 올리려는 기획이려니 짐작이 갔다. 다소 진중한 무대와는 반대로 김국진, 윤종신, 김구라, 신정환이 진행하는 인터뷰는 시종일관 가볍고 산만했다. 인터뷰는 주로 '왜 이승열은 뜨지 않는가'에 촛점을 맞춰서 진행했는데, 이에 대해 이승열씨는 '앞으로 내 음악을 알리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내용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정작 속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듯 보였다. 다소 어눌한 말투 사이에 묻어난 뉘앙스로 볼때 그는 인기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냥 좋은 음악을 하고 싶을 뿐. 하지만 어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의무적으로 유명해져야 하는 것 같았다. 94년에 대뷔했다고 했다. 그정도 했으면 이제 국민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해도 흉이 아니다.

        얼마전에 내 친구 황용모가 작은 문화공간을 연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곳이 자리 잡히면 내 포스터를 모아서 전시하자는 용모의 말에 나는 반갑게 그러자고 대답했다. 전시회를 열면 눈에 보이는 여러 혜택이 생긴다. 지금까지 만든 것들을 모아서 흰 벽면에 쭉 걸어놓기만 하는걸로 이력서에 '몇년 몇월 어디서 이지원 개인전'이라는 한줄을 보탤 수 있다. 매년 직장에 의무적으로 적어내는 개인 활동 사항란에도 써넣을 수 있다. 물론 줄보태기가 전부는 아니다. 한국인이면서 한동안 한국에서 한 일이 없다는 자책감도 줄일 수 있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나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 이런 보이지 않는 성과도 크다. 이거야말로 일석 삼조가 아닌가. 하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작품 전시회는 어쩌다 한번 하는 이벤트가 될 수는 있어도 디자이너 본연의 일이 될수는 없다. '디자인 작품'이란 말은 왠지 목구멍에 걸린다.

        예술 계통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개인전 경력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것 같다. 예전에 지인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전임강사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지원서에는 지원자의 그간 활동을 종류별로 나눠서 점수를 메기고 합산하는 란이 있었는데, 항목 중에서 가장 큰 점수가 메겨진 활동은 '개인전'과 '단독 연구'로 각각 100점이었고, 가장 작은 점수는 '4인 이상 공동 연구'로 30점이었다. 개인전과 저서를 가장 비중있게 심사하겠다는 의도였다. 대부분이 팀작업인 그래픽 디자인 실무의 성격 때문에 내가 적어낸 목록에는 30점 짜리가 몇 항목을 차지했다. 대부분 대학교가 디자인을 예술대학으로 편성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교원 선발 기준도 순수 미술 학과에 맞춰가는 듯 했다. 마이클 록은 순수예술에서 작가성이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작가라는 말은 창조적 활동을 관장하는 어떤 존재를 의미한다. 순수예술에서는 이런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문학, 회화, 조각, 음악은 지은이의 천재적 능력이 곧바로 예술적 가치로 이어지는 분야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가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작품의 가치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The Designer as Author, Michael Rock, 1996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들로 구성됐던 심사위원회는 개인전이 전무한 내 경력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작 나 자신은 매체를 통해 발행된 팀 작업을 써넣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디자이너의 능력이란 '작가'로서의 창조력 뿐만 아니라 협력자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알고는 있지만, 창의력이 바탕이 되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이름 석자를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디자이너도 이런 심리에서 예외가 아니다. 마이클 록이 말했듯이 역사에 남은 회화 작품은 개인의 천재성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훌륭한 예술작품에는 칭송이 따르고 칭송은 권위를 부른다.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명성과 권위를 잣대로 들이댄다면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정말 하찮게 보일 수도 있다. 디자이너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기껏해야 5 평방 밀리미터 정도를 차지하는 크레딧 정도? 운이 좋다면 디자인 연감 한페이지에 이력이 소개되는 정도?

        아무리 대범한척 하려 해도 오랜동안 밤잠 설쳐가며 애지중지 만든 포스터에서 내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은 슬프다. 노력한 만큼의 보수를 챙겼다든지, 아니면 별 애정없이 처리한 업무라면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적은 댓가와 열악한 환경을 마다않고 어떻게든 잘 만들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작가의 이름을 드러내는 미술을 '엘리트주의'라고 비난했던 1900년대 초 예술가들의 영향에서인지 그래픽 디자인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디자이너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반면 개개의 디자이너는 그래픽 창조자로서 능력을 인정받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런 양면성을 안고 살아간다. 

        나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일상 속 디자인 업무만 계속해서는 빠른 시간안에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 전시회까지 기획할 짬을 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을 극복하게 할 만큼 신분상승의 매력은 달콤하다. 때문에 디자이너는 기회가 된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전시회에 뛰어든다. 루디 반더라스는 디자이너가 품는 유명세에 대한 갈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을 썼다.


샌프란시스코 팬타그램에서 연락이 왔다. 그쪽에서 현재 진행중인 프로모션의 인쇄물에 에미그레 이름을 넣어도 좋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 인쇄물에 재생용지를 쓰지 않는다고 하길래 에미그레는  빼달라고 대답했다.
몇주 후, 친구인 밥의 집을 방문했다. 밥은 어떤 종이회사에서 받은 엽서를 펄럭이며 소리쳤다. "이것 좀 봐! 너희들 이제 유명해졌구나" 그 엽서는 우리가 협찬을 거절했던 프로모션 행사 엽서였다. 협찬 동의를 묻기 전에 인쇄물을 먼저 제작했던 것이었다. 팬타그램은 설마 우리가 제안을 거절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으리라.
그래픽 디자이너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이름이 노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 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바라고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마다 않는다. 심지어 유명해지기 위해 공짜 상품을 뿌리기도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당신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Emigre No. 69: A History of Emigre Magazine


        익명성에서 오는 소외감을 달래기 위해 개최하는 전시회는 전혀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위로받고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면 오히려 권장하고 싶을 정도다.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내가 한 일을 보여주고, 칭찬받고, 의견을 나누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디자인 전시는 활발히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그 이상이란 '디자인은 전시회로 귀결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말한다. 내가 혐오하는 디자인 전시회는 애초에 디자이너가 전시를 목적으로 작정하고 만든 것을 갤러리에 내거는 전시다. 전시회를 위해 만든 무엇은 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없음에도 이러한 전시회들은 버젓이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고개를 내민다. 디자인이 사회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분야로서 인정받고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일상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현실적인 것을 다룬다는 디자인 고유의 성격 때문이다. '전시를 위한 디자인'은 이러한 분야 고유의 가치를 흐린다. 순전히 전시를 위해 만든 어떤 것은 디자인이 아니다. 그런건 디자인처럼 보이는 회화다. 사람들은 이러한 디자인 전시를 보면서 디자이너가 하는 일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디자이너가 밭을 갈면 깻잎도 디자인이 되나?

        같은 디자이너들도 이런 가치의 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달이 멀다하고 이어지는 유명 디자이너와 디자인 단체, 대학 교수들의 개인전을 찾아다니는 말단 디자이너는 불안하다. 밤새워 학습 참고서만 디자인 할게 아니라 나도 내 멋대로 뭔가 만들어서 개인전을 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실천에 옮기기는 어렵지 않다. 장담컨데 학습 참고서를 능숙하게 잘 만드는 디자이너가 세 달정도 휴직하고 개인 작업에 집중한다면 어디에 걸어도 부끄럽지 않을 타이포그래피 작품들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건 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그게 정말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전시를 통해서 이름을 알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디자인에 대한 뒤틀린 인식을 느낀다. 학습지 디자인은 타이포그래피 전시회에 걸린 실험적인 작품보다 못하다는 편견이 있는걸까?

        용모가 말꺼낸 전시회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은사이신 윤호섭 선생님의 초청으로 예전에 모교에서 했던 강연이 떠올랐다. 준비한 발표를 마치고 이어진 토론 중에 나는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사람은 디자이너가 아니다'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에 한 학생이 물었다. "디자이너도 가끔 전시를 하면서 표현의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이 날카로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대략 '표현의 기쁨을 전시장에서 찾지 말자'는 뜻으로 꾸역꾸역 대답했던 것 같다. 늦었지만 강연에서 했던 말을 지금 번복한다.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사람은 디자이너가 아니다'라는 말은 틀렸다. 내 뜻을 정확히 전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전에 티티엘 메거진을 만들던 시절, 취재차 들른 어느 카페 테이블에서 티티엘 메거진 과월호를 발견했다. 무심코 한달전에 만든 그 잡지를 펼쳤다가 나는 왈칵 감격의 눈물을 쏟을뻔 했다. 어느 이름 모를 독자가 페이지 구석구석에 낙서를 해놨던 것이다. 볼펜으로 낙서를 할 정도로 편하게 봐줬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내가 디자인한 인쇄물을 누군가 온전히 자기 것으로 여겨줬다는 기쁨이었을까. 모르겠다. 내가 감격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다만 이것 한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만약에 그 독자가 혹여 구겨질까 조심하고 다시 제자리에 고이 모셔놨더라면 나는 그런 가슴 벅찬 느낌을 지금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나는 낙서가 새겨진 그 잡지를 집으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