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디자인이라는 말에 내삶의 많은 부분이 담겨있다. 이직업으로 밥을 먹고 있으며, 이직업의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난다. 나에게 직업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내 생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말이 학생때에는 매우 멋진 말 같았다. 적어도 시각디자인이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그래픽디자인이라는 말이 더 간지가 나보였다. 무언가 전통성을 찾아가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현재의 나에게는 그래픽디자인은 내 삶을 표현하기에 역부족인 단어이며 내가 하는 일을 표현하기에도 너무나 부족한 단어이다.
일이 힘들고 지칠때면 그래픽디자인은 나에게 직업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말이된다. 이것으로 밥을 먹고 살기때문에 신문사에 다니는 친구도 장사를 하는 친구도 모두 그래픽디자인처럼 보인다. 나에게 무언가 힘을 주고 용기를 주었던 이말이 이제는 직업이 된 것이다.
학생때 내가 접한 그래픽디자인이라는 말은 세상의 전부같았다. 다른 이들이 이 직업을 하지 않는다는것에 얼마나 불행한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속의 그래픽디자인은 그래픽디자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딱 그말의 역할을 하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날 내가 얘기했던 말들은 오히려 과장되었고 거짓된 것이었다.
이제다시 현실로 그래픽디자인을 바라본다. 무언가 일로서 그 자유로움을 잃어버린 이말에, 이미 지난말이 되어버린 과거의 죽은 이말에... 나는 아직도 무언가의 방향을 찾고있다. 그것이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말이다. 그러나 나에게 아직도 그래픽디자인은 멋진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문자와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고 타인과 말을 하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에 언제나 나와 얘기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실로 이 일이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거나 세상을 변하시키는 것에 큰 힘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순간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것이기에 나는 그래픽디자인이란 말이 좋다.
누구도 신문을 보면서 이 서체가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누가 스타벅스의 로고를 디자이너처럼 일일이 따져가며 보지 않는다. 몇달을 고생해서 만든 우유패키지를 다른 사람들은 쉽게 사마시고 쓰레기통에 구겨버린다. 그러나 세상에는 엄연히 그래픽디자인이 존재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티셔츠에도 길을가다 버려진 과외모집광고에도... 세상에는 수많은 그래픽디자인이 존재하고있다.
수많은 담론과 고민이 디자인이란 이름으로 그래픽디자인을 숨죽이고 질식사 시킨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그래픽디자인은 존재할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 공간은 수많은 매개체가 나와 타인을 연결시켜주고 그 매개체의 대부분이 또한 그래픽디자인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