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키디
이지원 옮김
The Education of a Graphic Designer, Edited by Steven Heller, Allworth Press, 1998


성공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 대기업을 상대하고 디자인 시상식에 이름이 뻔질나게 오르내리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왜 디자인 학교 같은 곳에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인간관계에 신경쓰고 공모전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유명세를 얻을 수 있는데 왜 쓸데없이 학교같은데는 다니느냔 말이다. 등록금에 처박을 돈이 있으면 차라리 그걸로 사무실을 차리고, 컴퓨터 몇대 사고, 공모전 참가비를 충당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 다음은 간단하다. 갓 학교를 졸업한 신참 디자이너를 고용하기만 하면 된다. 좋은 교육을 받은 젊은 친구들은 컴퓨터 기술에 능통하고 최신 스타일에 민감하다. 그뿐이 아니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학자금 융자를 갚고 새 컴퓨터를 살 돈이 궁하기 때문에 월급을 조금만 줘도 열심히 일해주기 마련이다. 그렇게 몇년 써먹고 월급을 올려줘야 할 때쯤 되면 그냥 과감히 잘라버리는게 좋다. 디자인 학교가 매년 새로운 인력을 배출하기 때문에 젊은 디자이너를 재수혈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죄책감 느낄 필요 없다. 어디까지나 당신은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줄 뿐이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것? 바로 '산 경험'이다.

멀지 않은 옛날에는 혼자 일을 익히거나 장인의 밑으로 들어가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동굴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디자인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산다는게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디자인을 독학으로 익힌다는 개념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요즘 사람들은 디자인을 독학한다는 것을 졸업장 없이 전문 디자이너가 되는 옵션 정도로 여긴다.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혼자서 디자인을 익히는 사람들은 수많은 책, 소식지, 단체, 발표회 등을 접하며 업계 동향을 줄줄이 섭렵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디자인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이 모두 새롭고 '독창적'이라고 여기기 일쑤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행복하다. 아웃사이더로서 디자인 사회속에서의 관계나 책임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모든 이들이 자신의 작업을 칭찬해주길 바랄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독학으로 디자인을 익힌 사람들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더욱 '전문가'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그래서 디자인 공모전에 작품을 많이 내고 협회나 단체에 가입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과거 상업 미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형식을 쿨하게 무시할 줄 아는 자유분방한 디자이너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한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정보화 사회에서 과연 독학이란게 가능한 것일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 못하는 사람, 혹은 민간 예술을 차용하는것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는 사람을 독학 디자이너라고 부르는게 과연 맞는 말일까? 어떤 이들은 혼자서 디자인을 익혔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무지함을 합리화 하는 동시에 그저 모든 걸 깊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넘어가도 되는 면죄부 효과를 노린다. 그런데 왜 디자인 사회는 그들의 작품을 찬양하는 걸까?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교육기관의 수혜를 입지 않고 성공한 사람을 우러러보는 미국 문화도 그 이유 중 하나다. 독학으로 성공한 디자이너는 세계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유독 미국 사람들만이 정해진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굳세게 성장했음을 훈장을 단 것인양 자랑스레 여긴다. 미국인은 자수성가를 최고의 미덕으로 친다. 이는 힘없고 나약한 것들을 정복하고 깃발을 꽂는 우리의 개척자 정신에 기인한다. 미국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순진하고 무식한 것을 곧 정직함으로 연결짓는 미국인들의 성향을 잘 안다. 우리는 바보스러운 영웅이나(포레스트 검프), 혹은 스스로를 내동댕이치는 여자(마돈나), 매너없는 괴팍한 선수(데니스 로드맨), 어리숙해 보이는 방송인(하워드 스턴)과 같은 이들을 찬양한다. 그리고 반대로 좋은 교육을 받은 지적인 사람은 좀 차갑고 계산적이고 표리부동하다는 편견이 있다. 미국 영화나 티비쇼는 나쁜 캐릭터를 최고로 똑똑한 사람으로 설정하곤 한다. 뉴스에서는 폭탄 테러범이 고학력자라는 사실을 은근히 강조한다. 미국인들은 참으로 운이 좋다. 사악한 교육을 받기보다 무식한 채로 남는 편이 인정받기에 더 유리하니 굳이 뭘 배워보려고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 배경 없이 성공한 사람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디자인 사회에서 그게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일일까? 디자인은 결국 용역의 성격을 띈다고 볼때, 주류문화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일수록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고 싶은 바램이 강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학문에 매진하여 지식과 기술을 고도의 경지까지 갈고 닦은 사람은 주류에서의 인기와는 거리가 멀다. 학교와 상관없이 혼자서 디자인을 익힌 사람의 성공사례를 아무 생각없이 덮어놓고 칭송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분야를 일궈온 학자들의 업적과 그래픽 디자인 역사를 잠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독학 디자이너가 디자인 사회에 붙어 사는 기생충이라는 건 아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유명한 독학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들이대면서 디자인은 지적인 학문활동이 아니라고 불평하는 목소리는 가볍게 들어 넘길 수는 없다. 디자인 학교, 특히 대학원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두드러진 지식활동에 대한 반작용도 크게 한몫했다.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 교육의 중요성을 말했던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사람들은 요새처럼 유동적이고 복잡한 상황을 돌파할 대안으로 말만 뻔질나게 늘어놓는 대학원생보다 단순무식한 독학 디자이너에 더 주목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요즘엔 교육받지 못한 디자이너보다 교육을 많이 받은 디자이너에게로 비평의 화살이 많이 향하는 것 같다.

혼자서 디자인을 익힌 사람은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더구나 독학한 디자이너 대부분은 제대로 교육받은 디자이너와 손을 잡고 일하거나 아니면 디자인 사무실로 들어가곤 한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대학을 나온 이들이 디자인 공부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는데 있다. 디자인 교육은 평생토록 이뤄나가야 할 과업임에도 많은 이들이 배움은 그저 학위를 따기위해 거쳐야 할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조금 아는 것은 모르느니만 못하다'라는 속담이 꼭 맞다. 불행히도 대다수 디자이너들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은 이미 다 배웠다고 자만하고 자신의 얄팍한 지식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디자인 교육은 더이상 직업 교육이 아니라 발견과 혁신을 위한 연구라는 중요한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지적 활동으로의 디자인을 부정하는 디자이너는 요즘 학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디자인 교육을 아니꼽게 본다. 그들이 경험한 학교는 20년간 계속 똑같은 것만 가르치고 있는 장소다. 디자인 사회에 어떤 새로운 사상이나 탐구가 등장했을 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소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교육계가 시간을 두고 충분히 논의하기 전에 미리부터 그런건 터무니없고 옳지 않는 시도라고 섣불리 단정지어 버린다. 그들은 자신이 가볍게 평가하는 대상이 진정 뭘 의미하는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겉보기엔 그들이 새로운 사상을 부정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진정 그들을 열받게 하는 것은 사상 그 자체가 아니다. 새로운 사상으로 인해 그들이 딛고 서있는 디자인계가 요동칠거라는 사실이 그들을 화나게 하는 것이다. 물론 본인들은 부정하겠지만.

디자인 교육에 확고한 기준이 서려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육을 신용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졸업한지 오래된 디자이너는 직접 수업을 참관하거나, 디자인 교육 컨퍼런스에 가거나, 잡지에서 정보를 접하지 않는 이상 현재 대학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디자인 관련 단체들은 교육을 교사와 학생들만의 활동으로 동떨어뜨려 취급하려 한다. 포트폴리오 심사와 같은 행사를 열면서 학생들이 어떤 커리큘럼으로 공부하는지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채 그저 결과물만 보고 좋다 나쁘다는 식으로 평가한다. 디자인 잡지도 교육에 관련된 화제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날렵하고 휘황찬란한 학부생 작업을 조금 보여주고 짧은 설명 몇줄 달아주는게 고작이다. 대학원 단계에서 이뤄지는 연구는 잡지에 거의 실리지 않는다. 너무 복잡하고 깊이있는 내용이어서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끌기 힘들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에미그래는 여기서 예외다)

현장 경험을 통해 전문성이 갖춰진다는 편견이 지적인 사고를 거부하는 분위기를 더 거세게 몰아간다. 여기서 말하는 디자이너의 '전문성'이란 지극히 상투적인 편견이 이뤄낸 개념일 뿐이다. 완전한 해답을 찾기 위한 문제 해결, 대를 이어 전해지는 영원불멸한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과 같은 발상이 이런 편견에 해당된다. 이같은 진부한 사상으로 말미암아 그래픽 디자인은 깊이없고 감상적인 말장난과 단조로운 형태로 점철됐다. 디자인 사회가 이런 단순한 발상을 계속 오냐오냐 받아주는 한 주류 디자인 사회에서 의미있는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지금껏 봐왔듯이 반 지적 성향을 자랑스레 내세우며 실무에서의 전문성을 운운하려는 시도는 그래픽 디자인이 문화 속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진정한 전문영역으로 올라서는데 걸림돌이 될 뿐더러, 다음 세대의 디자이너들이 앞으로 길을 찾아 나가는데도 전혀 보탬이 안된다.

전문적이란 말은 개인의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확고히 정해진 체계를 따라 객관적으로 일을 수행함을 말한다. 디자인 사회에서 '전문성'이라는 말이 흔히 오가고는 있으나, 그래픽 디자이너는 전문직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어떤 규범과 표준에도 제한되지 않는다. 그래픽 디자인 관련 협회에 참가하는데는 어떤 자격 조건도 없다. 명함에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새기고 입장료를 내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다. 진정한 전문가는 디자인 학교에 있다. 디자인 학과 교수들은 '전국 예술 디자인 조합(NASAD)', '서부 학회 연합(WASC)'과 같은 기관으로부터 자격증을 받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보고하는 공인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교육자들은 교육 전문가일 뿐 디자인 전문가는 아니다. 학생들을 전문가로 길러내지 못한다는 혐의를 들어 진짜 교육 전문가를 비판하는 현직 디자이너의 모습은 그래픽 디자인 사회에서 전문성이란 결국 허상일 뿐이라는 역설적인 현실을 반영한다.

학교에서 수행하는 연구가 단순히 예술적 표현을 통한 유행 창조를 위한게 아니라 분야의 전통을 굳건히 다지는 활동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디자인 업계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최신 기술과 기본적인 형태, 실무 용어를 익히고 나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학교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라고 인식하는 기성 디자이너는 거의 없다. 학교는 우리 분야의 가치기준을 정교하게 갈고 닦으며 새로운 사상을 세우는 곳이다. 디자인에서 어떤 가치가 제기되고 중요하게 부각됐을때 그것을 제대로 연구하고 지속 발전시키는 곳은 업계가 아난 학계다.

그래픽 디자인을 역사적, 문화적 상황과 관련지어 폭넓게 연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분야가 하나의 전문영역, 혹은 예술 장르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다. 디자인 교육은 이런 폭넓은 연구를 수행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디자인 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디자인의 의미를 탐구하고 규정하며 분야의 핵심을 이루는 사상, 논제, 가치를 다루는데 있다. 개인의 경험은 성공하는 방법과 실패를 면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은 과거에 있었던 성공과 실패의 가치를 공평한 관점, 즉,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가르친다. 개인의 경험은 한 사람이 겪은 일인 반면, 교육은 과거의 수많은 문화와 관점, 가능성이 얽힌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디자인 교육은 도구를 잘 다루게끔 숙달시키는게 아니다. 디자인 교육은 디자이너로서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바꿔나가는 과정이다. 디자인에 대한 생각은 다양하다. 정보를 구성하는 문제 해결법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사회적 책임이 더해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디자인을 뭐라고 생각하든지 간에 교육은 디자이너의 이해 범위를 넓혀주고 각자의 신념을 더 확고히 다져줄 것이다. 어떤 현상과 사상에 대해 활발히 얘기가 오갈수록 분야 내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분야 바깥의 사람들은 디자인을 이해하게 된다. 디자인의 미래는 교육과 경험 모두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만약 한쪽에만 치우치고 다른 한쪽이 부실하다면 모든 것은 모래위에 지은 누각처럼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말이 딴세상 얘기처럼 들린다면 당신은 아직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거다. 대중에게 디자인을 이해시키고 가르쳐야 함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디자인 교육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디자이너 자신이다. 지금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중 대다수는 디자인 역사, 이론, 윤리에 무지하다. 프로그램을 다루고, 견적을 뽑고, 공모전 참가서를 작성하는데는 능숙할지 모르나, 자신의 작업을 비평적, 역사적, 문화적 관점에 입각해서 수행할 줄은 모른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대중과 협력업자에게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똑똑해져야 한다. 혼자서 디자인을 익혀 성공한 사람들의 열정과 재능은 충분히 우러러 볼 만하다. 하지만 집단이 이루는 업적에 비하면 개인의 성공은 극히 사소하고 덧없을 뿐이다.

지난 10년간 디자인 교육에는 큰 개혁이 이뤄졌다. 그리고 동시에 수많은 문제도 함께 발생했다. 좋은 디자이너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양분으로 자라남을 인식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일을 재량껏 진행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고 그 권한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갖춰야 한다. 디자인 교육자의 임무는 더욱 똑똑한 디자이너를 길러내는 것이다. 업계의 '전문가'는 디자인 교육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의 연구가 앞으로 더 넓고 깊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자극해야 한다. 교육자는 현직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그래픽 디자인을 정보화 세계의 문화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분야로 끌어올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그 어떤 개인보다 크다. 지금부터 이 생각에 걸맞는 활동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