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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모더니즘 8.0
Mr. Keedy 씀
Emigre No. 64, RANT
이지원 번역
흥미진진한 사건 하나 없이 잠잠했던 최근 디자인 사회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이제 해볼 만한건 다 해봤다' 라는 식으로 말한다. 사실이다. 겉모습만 보자면 그렇다. 한때 새로웠던 디지털 흉내내기는 이제 약발이 다했고, 대부분의 '법칙'은 이미 수차례 뒤집혔다. 하지만 누군가 깃발을 꽂은 산에는 아무 볼거리도 없을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금껏 디지털 기술의 도래에 부응해 등장한 시도들은 한결같이 쓸데없는 것들 뿐이었다. 누가 그런 것 따위를 만들든 말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나도 예전에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렇고 그런걸 몇개 만들어 본 적이 있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몇몇 디자이너들이 포스트모던을 표방하며 선보인 실험들로 인해 그래픽 디자인 사회가 공황상태에 빠졌다. 사람들은 이때 유행했던 디자인을 두고 '의도적으로 못생기게 만든 디자인', '혼란스런 디자인',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과 같은 이름을 붙였다.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이 무슨 뜻인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다시 모더니즘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모더니즘은 한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못생긴 디자인'이 유행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픽 디자인은 모더니즘을 시대에 맞게 발전시키고 재규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사로잡혀 있었다. 만약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다른 분야들이 골치썩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폭풍을 쉽게 피해갈 수 있을거라 믿었다. 여기에 디자이너 특유의 무기력증, 모더니즘이 정해준 그리드, 법칙, 시스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만 같은 공포감이 이런 발상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런데 모더니즘이 새로 재편되어 등장할 때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점점 더 냄새를 짙게 풍기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댄 프리드만이 1994년에 주창한 '급진적 모더니즘'(1)은 이전보다 훨씬 유연하고 부드러운 모더니즘을 말한다. 엔드류 블라벨트가 말한 '복잡한 단순화'(2)는 90년대에 유행했던 복잡하고 진부한 디자인과 완전히 대비되는 간단하면서도 인상적인 새로운 모더니즘 방식을 보여줬다. '다시 시작: 새로운 그래픽 디자인 시스템(3)'이라는 책에는 최근 유럽에서 모더니즘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모더니즘의 견고한 사고 방식에 대한 반발은 그래픽 디자인을 방종으로 내몰았다. 디자인 비평가는 1995년에 이미 '포스트모던 스타일'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네덜란드 출신 비평가인 카렐 키텐브라우어는 '새로운 절제주의'라는 글을 통해 당시 비평가들이 관측한 네덜란드 디자인 사회의 분위기를 묘사한다. 이제 그래픽 디자이너는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상황에 주어진 제약을 활용해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작업에 임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들이 회자하는 최근 디자인계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1 모더니즘이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도전을 받아 간단히 무너졌고, 2 이는 곧바로 '방종과 타락'으로 이어져, 3 다시금 단단히 다져진 모더니즘이 돌아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와 같은 간단한 설명으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정한 의미와 가능성을 도무지 알아먹지 못한채 그저 그것의 '타락'한 표현의 일면에만 주목했던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무식함을 은근슬쩍 덮어버리려고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깊이있게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나사 빠진 모더니즘 스타일을 따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모더니즘이 처음 등장한지 80년이 지나서 또 하나의 아류 스타일이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가리켜 '모더니즘 8.0'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모더니즘의 명맥을 그래픽 디자이너의 뼛속에 깊게 되새기려는 투쟁의 대표적인 사례라면 '닷 닷 닷' 매거진(4)을 들수있다. 이 디자인 잡지(아니면 편집인이 말한대로 '잡지가 되기 위한 시도'라고 불러줘야 할까?)는 디자이너에 대해 말하기보다 디자인이라는 개념 자체에 비평적 의문을 제기한다. 여타 디자인 잡지가 즐겨 사용하는 광택지, 여백, 장식적 지면구성, 디자인 화보의 단순 나열에 대해 경멸을 표하고 실제적인 사안을 비평적이고 공격적으로 다루기를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닷 닷 닷은 여전히 하나의 스타일 견본집 이상이 되지 못한다. 닷 닷 닷은 전형적인 모더니즘 8.0 스타일 견본집이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디자인 잡지들이 형태를 재료로 내용을 구성하는 반면, 닷 닷 닷은 내용을 재료로 삼아 형태를 만든다. 그런데 이런 방식에는 문제점이 있다. 어떤 내용을 표현하는 하나의 절대적 형태란 존재할 수 없다.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인식과 개념을 바탕으로 형태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을 추종하는 이들은 개인의 경험을 반영하는 스타일을 최소화 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보편적 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수많은 증거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근본주의자(a)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모더니스트는 취향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스타일이든지 시간이 지나면 퇴색할 수 밖에 없다고 봤다.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모든 형태와 스타일은 언젠가 그 결함을 드러내어 골칫거리로 돌변한다. 당신의 취향은 결국 당신의 약점이 될 것이다. 스타일을 활용함에는 이런 위험부담이 따른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해서 디자이너는 스타일을 철저히 배제한 채 작업에 임해야 한다고 단정짓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고? 익히 알고 있듯이 우리가 '고전'이라고 칭송하는 몇몇 스타일과 형태는 눈에 띄는 요소를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현재의 높은 위상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이 언젠가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표현으로 비춰지게 될거라 울부짖으며 자학이라도 해야 하는건가. 스스로를 극도의 절제력으로 옭아메야 한단 말인가.
모더니즘 8.0은 이런 스타일 혐오증과 사이비 과학에 근거한 거짓 객관성을 동시에 포괄한다. 그리고 여기에 60년대와 70년대에 유행했던 '뭐든지 옳다'라는 식의 상대주의적 관점도 덧붙여진다. (나팔바지가 유행했던 시절의 얘기다) 이와 같은 접근방법이 과거에 한번 제대로 실패한 적이 있다는 사실쯤은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역사 속에서 상대주의적 기능주의는 간혹 실랄하고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 적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저 다듬어지지 않고, 제한되고, 단조로운 콘셉과 형태를 통해 드러나는 황량한 시각 언어 이상의 어떤 것이 되지 못했다.
실용성은 그래픽 디자인의 필수 조건이다. 디자인이 예술이나 종교가 아닌 '디자인'으로 구분되는 이유는 바로 이 실용성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얼마나 유용하냐라는 기준만으로 디자인의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다. 기능을 근거로 한 객관적 디자인은 주관적 가치 평가 없이는 아무데도 이르지 못한다. 객관적 표현과 최소화한 형태에 대한 그릇된 신념에 현혹되어 디자이너는 모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명확한 표현이 존재하리라는 환상을 품었으며, 이에 따라 하나의 협소한 편견(모더니즘 스타일)을 전세계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인 양 퍼뜨리는 잘못을 범했다.
모더니즘 8.0은 양쪽 세계의 가장 좋지 않은 면만을 골라서 취한다. 모더니즘의 시스템, 최소화, 독선적 스타일을 따르면서,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적 관점, 수준낮은 취향, 현학적인 자기 중심주의를 내포한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은 최소한의 방어책 밖에 될 수 없다. 대담하다거나 혁신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기껏해야 가까스로 목표를 완수하는 정도가 시스템이 할 수 있는 전부다. 또한, 청소년을 위주로 돌아가는 대중문화로 인해 디자이너는 그저 새롭고, 멋지고, 반항적인 표현만을 진부하게 답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서로를 자극할 만한 작업이 나오리라 기대할 수 없다.
주제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두고 쿨한척 하고 싶은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은 근원없는 짝퉁일 뿐이라는 생각을 품는 사람들에게 모더니즘 8.0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그들은 '디자인 냄새'를 풍기는 것이라면 덮어놓고 싫어한다. 왜냐면 디자인된 것은 모두 '가짜'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저능아같은 발상이다. 이런 식으로 단정짓기에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사람들의 성향은 한없이 다양하다. 인간은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그곳에 깃든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은 특수하고 개인적인 표현을 통해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활동이다.
간단히 말해, 디자인을 하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일 뿐이다. 이는 일찌기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원시적인 상태에 대한 향수다. 여느 다른 환상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는 간단한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역설적인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게 하는 함정이 도사린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디자인은 간단한 용어로 정의할 수도, 없는 것처럼 무시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이다.
귀엽게 만들기 (Cuteism)
귀엽게 치장하는 방법은 모더니즘 8.0이 고유의 차갑고 딱딱한 성향을 완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 스타일이다. 마치 브루어 의자(b)에 분홍색 커버를 입히듯이 모든 것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온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모더니즘이라는 케익 위에 뿌린 별사탕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귀여움은 강한 권력을 연상시킨다. 귀여움의 원조는 어린아이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나약함을 보며 자신의 힘을 확인한다. 이런 방법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이게 속임수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여지없이 행복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타인의 나약함은 나의 상대적 강함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동정심을 유발한다. 참으로 귀여운 수작이지 않은가?
추하고 거친 세상 속에 귀엽거나 속물스런 이미지를 내놓는다고 해서 그걸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냥 괜찮다고 인정할 수 있을만큼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특히 어른들이 이런 귀여움에 집착하는 경우엔 더 그렇다. 디지털 혁명이 시작되던 시점에 그래픽 디자이너는 글자, 음향, 모션의 개념을 새롭게 규정하는 비선형적 하이퍼텍스트를 관장하는 역할을 맡게 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웅대한 포부는 무너졌다. 지금 우리 눈앞에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만화영화들이 널려져 있을 뿐이다.
사태가 이렇게 진행된 데에는 컴퓨터가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수많은 디자이너의 표현 능력이 단순한 형태(유아적 스타일)에 제한된 채, 장식을 활용한 시각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불구가 된 현재 상황을 컴퓨터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요즘 디자이너는 그리스, 중국, 켈트 스타일에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지 대답하지 못한다. 요즘의 장식 스타일에조차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그저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제조해 내기에 바쁘다. 굳이 말하자면 이것이 모더니즘 8.0의 고유 문화라 할 수 있다.
지금은 고전이 된 오웬 존스의 1856년 저서, '장식의 법칙(5)'이라는 책에는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한 글귀가 있다.
"사각형과 원을 이용한 구성은 단순하고 따분하기 이를데 없다. 기본 구성단위가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정한 간격과 구획을 따르는 쉬운 구성은 이보다 훨씬 많은 정신 노동을 요하는 구성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 예술이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시기에 만들어진 모형과 장식은 원뿔 모양과 같은 복잡한 곡선을 담고 있는 반면, 예술이 쇠퇴하던 시기에 등장한 장식은 컴파스로 그린것 같은 단순한 형태가 주를 이룬다. 이는 세계 어디를 가나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표현의 기본단위가 몇 안되는 단순한 형태로 제한됐기 때문에 최근 서양 문명이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설명은 충분치 않다. 하지만 최소의 형태가 최소의 기술과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말이 된다. 오래전 최소 단위 형태만으로 작업한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을 돌아보라. 베거스테프 형제라든지, 어프리 버슬리, E. 나이트 맥카퍼와 같은 이들의 작품은 그래픽 제조 기술이 월등한 요즘 시대에 나오는 그 어떤 그래픽과 비교해도 감정의 깊이와 형태의 수준에 있어서 매우 월등하다. 그들의 작업은 가장 축소된 형태로 구현됐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담긴 사상과 감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그들의 작품에 있어 기하학적 구조와 절제된 색채는 복잡한 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그 자체가 목적이지 않았다. 요즘은 반대다.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 목표가 되고 있다. 콘셉트가 형태로 치환된다. 모든 것이 액면 그대로일 뿐, 깊이 있는 의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귀엽게만 만들면 장땡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틀렸다. 귀여운 표현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그게 꼭 귀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사이비를 제조하는 그래픽
디자인은 단지 스타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활동이라는 사실을 떠들어대고 싶을 때, 디자이너는 거짓된 유식함으로 포장한 그래픽을 만들며 유난을 떨곤 한다. 학술지를 흉내내어 속내용을 표지에 그대로 노출하기, 한 지면을 아이콘 크기로 축소해서 통계 도표처럼 위장하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복잡하게 토해내서 좀 있어 보이게 만들기. 이런 현학적 치장이 바로 거짓 멋부리기 방법에 해당된다.
모더니즘 8.0이 내포하는 최소주의와 기능주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옛것을 폐기하고 새것을 쫓는 갈망은 거짓된 지적 접근이라는 방법론을 낳았다. 나는 이것을 두고 '사이비 그래픽'이라고 부른다. 얼핏 보기엔 진지한 정보를 바탕으로 구성한 그래픽인가 싶다. 형태의 표현보다는 정보를 구성하는 방법 자체가 곧 시각적 유희로 연결됨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디자인이 자랑하는 '시스템'은 사실 보는 사람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거짓부렁이다. 이런 그래픽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래픽의 세부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지, 결코 정보 구성 방식이 획기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포스트모던 초기에 튀어나온 최악의 실험들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뭔지 모르게 유식해보이고 왠지 어떤 의미가 있을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쭉정이일 뿐이다. 보는 사람에게 감동이 아닌 분노를 선사하는 그래픽이다.
요즘 사람들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는 현실을 생각해 볼때 정보라는 개념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되는 상황은 전혀 이상할게 없다.(6) 그런데, 디자이너는 작업에 임하며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와 가공된 '정보'라는 서로 다른 두 개념을 구분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데이터를 마치 정보인 양 이해하고 취급하려 한다. 많은 디자이너가 이러한 날것의 데이터로부터 아이디어와 사상을 도출해 낼 수 있을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이 생산하는 이른바 콘셉트 위주의 작업이란 것들을 살펴보면 이런 믿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디자인은 아이디어와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이라는 발상은 낡아도 너무 낡은 헛소리다. 외부 사람들은 이런 헛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비웃는다. '그래픽 디자이너란 인간들은 자신이 만든 기발한 그래픽과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허무개그를 지어내어 그걸로 지식 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착각속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구나'
사이비 디자이너는 너무 겁쟁이거나 혹은 너무 게을러서 스스로 어떤 의미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스타일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신의 관점을 감춤으로써 보는 사람이 직접 검색 엔진을 가동해 의미를 찾아내기를 요구한다. 환장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과 참을성을 발휘해서 이러한 사이비 그래픽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있다면, 이따위 것을 열심히 들여다 봐야 괜한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교훈 정도가 고작이다.
진정한 그래픽 디자인 전문가는 시각적 소통을 풍부하고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창조적 활동이다. 어떤 디자이너는 스타일을 빼내면서 이러한 창조성까지 함께 내다 버린다. 욕조의 물을 버리면서 그 안에 있는 아기까지 함께 버리는 꼴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이 최신 유행에 민감하고 콘셉트를 다루는 작업을 한다며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한결같이 텅빈 욕조처럼 보일 뿐이다. 이런 경우 디자이너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평가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면 디자이너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생각했을때 디자인 과정에서 디자이너를 빼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디자인 하지 않은 디자인,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남은 마지막 보루
아무것도 새로울게 없다고 생각하는 디자이너, 스타일을 문제 해결의 부산물 따위로 폄하하는 디자이너, 모더니스트의 허풍에 사로잡힌 디자이너. 이들은 스타일에 딸려오는 귀찮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 방법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이 움켜잡고 있는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란 실제로 불가능하다. 무심히 내버려뒀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선 우선 그렇게 보이게끔 해주는 시스템과 구조를 계획해야(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타일 없는 스타일은 디자인을 하지 않은 듯 보이게 하는데 그 목표가 있다. 디자이너가 표현을 해서도 안되고 솜씨와 전문성을 보여서도 안된다. 그냥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디자인을 하게 놔둬야 한다. 새롭거나, 멋지거나, 애매하거나, 옛스럽거나, 역사적인 글꼴을 써서도 안된다. 그저 평범한 이미지와 대강 그린 듯한 도표, 그리고 거기에 그리드와 헬베티카를 사용해야 한다. 빈곤함으로부터 억지로 가치를 찾으려하고, 수정같이 투명한 술잔을 스티로폼 컵으로 둔갑시키려 하는 거짓된 기능주의가 지금 여기에 있다.
어떤 이들은 모더니스트의 자부심이었던 줄임의 미학을 내세운다. (동양에서 베껴온 사상) 그러나 어떤 주제에 깃든 멋진 요소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그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단순한 뭔가로 둔갑시키기는 미학이 아니라 그냥 멍청한 짓이다. 이것이 한물 간 모더니즘의 실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대학에서 공부한 디자이너는 이러한 낡은 스타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단속하고 작업의 구석구석을 신경써서 살펴야 했다. (모더니즘을 벗어나기 위해 모더니즘식 교리를 따랐던 것이다) 반면 아마추어 디자이너는 엉터리 모더니즘으로부터 탈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닷 닷 닷 잡지는 얼핏 보기에 그래픽 디자인에 아무 관심 없는 사람이 만든 듯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까다로운 디자이너의 손길을 통해 스타일 없는 스타일이 철저하게 적용됐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자연스러움은 억지로 가장할 수 없다. 디자인을 감춘 디자인 방식이 흥미롭고, 모더니즘식 전방위적 전통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하다. 그러나, 이 작업이 결국 그들을 어디로 데려다 줄지, 그래픽 디자인 사회를 어디로 인도할지는 여전히 미심쩍다. 사상과 사회정치적 논의만 중요하고 스타일과 형태를 통한 소통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면, 디자이너는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비평적으로 생각하고 최초의 데이터를 유용한 정보로 구성하는 일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사회 정치적 사상에 대한 논의는 그래픽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동참해야 할 일이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을 가지고 디자이너가 생색낼게 뭐란 말인가. 지금까지는 그래픽 디자이너는 시각 소통에 관계된 매체의 생산 수단을 거머쥠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간신히 지켜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상황도 오래가지 못할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이에 그래픽 디자이너는 앞으로 자신의 역할을 무엇으로 규정해서 사회로부터 분야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21세기 문화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특화된 분야를 꼽으라 한다면 그건 분명 따분한 모더니스트의 따분한 모더니즘 프로젝트는 아닐 것이다. 모더니즘식 디자인은 초기 디지털 기술과 후기 세계자본주의가 알아서 떠맡아 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소비주의 대중문화는 모더니즘을 이미 받아들였다. 더이상 디자이너가 그 신념을 이끌고 나가야 할 이유가 없다.
기업 브랜드라든지, 세계화 전략, 문화 기관의 표현수단으로는 모더니즘이 제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에게 모더니즘은 너무 지겨워졌다. 모더니즘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 유산과 다양성을 외면하며,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복잡하고 뒤얽힌 경험을 대변해 주지 못한다. 기술이 강력하게 발달함에 따라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모더니즘의 집요한 편견에 도사리는 위험도 함께 증가하는 중이다. 이제 모더니즘의 실패를 인정할 때가 됐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냉소적이고 방관적인 자세를 버리고 우리가 처한 포스트모던의 현실을 비평적이고 낙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초기 모더니스트들이 예견했듯이, 이제 예술은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이제 디자인이 실질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분명 이번 세기 안에는 모든게 제대로 자리 잡을 것이다. 단지 모든 사람이 이 현실을 인식하는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데 과연 누가 이런 움직임에 시동을 걸 것인가. 무기력한 디자인 단체? 광고 디자인 회사? 고립되고 비겁한 디자인 학교? 생색내기 바쁜 문화기관? 생계에 메달린 디자인 전문가들? 아니면,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어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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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 키디는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디자이너이자 비평가, 타입디자이너, 교육자이다.
* 역자 이지원은 번역하는 중에 속이 후련해짐을 느꼈을 정도로 이 글에 깊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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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Radical Modernism, Dan Friedman, Yale University Press, 1994.
(2) "Towards A Complex Simplicity," Andrew Blauvelt, Eye magazine, No. 35, Vol. 9, Spring 2000.
(3) Restart: new Systems in Graphic Design, Edited by Christian Küster and Emily King, Thames & Hudson 2001.
(4) Dot Dot Dot Magazine, Broodje & Kaas Publishing, NL, UK, DE, 2000.
(5) The Grammar of Ornament, Owen Jones, first published in 1856 by Day & Sons, Lincoln's Inn Fields, London. Published in the United States by DK Publishing, inc. 2001.
(6) Karim Rashid, the hip industrial designer of the moment, has coined the term "info-thetics," — the aesthetics of information. Although he says it is easier to do two dimentionally, he is trying to do 3D info-thetics design "that can say something about the digital age." IdN magazine, No. 2, Vol. 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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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a) Fundamentalism
(b) Breuer Chair: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마르셀 브루어가 디자인했다. 최소한의 철제 구조와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졌다. 바우하우스 교수였던 바실리 칸딘스키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후일 이탈리아에서는 칸딘스키의 이름을 따서 바실리 의자(Wassily Chair)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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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뒷편에 실린 부록 도표
옛날 모더니즘
1. 흑백과 원색 위주에 가끔 별색 하나
2. 헬베티카
3. 여백
4. 아이디어, 모두가 이해 가능한 시각적 익살
5. 구체적 시스템을 따르는 구성
6.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7. 형태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
8. 줄일수록 풍부해진다
9. 직선
10. 콜라쥬를 통한 예술적 표현
11. 순수예술 흉내
12. 기하학적 최소화
13. 형태는 내용으로부터 나온다
14. 장식은 범죄
15. 순수한 추상 표현
16. 정교한 장인정신
17. 줄임의 미학
모더니즘 8.0
1. 흑백과 별색 위주에 가끔 원색
2. 헬베티카
3. 여백
4. 아무도 이해 못하는 시각적 난리법석. 아이디어는 거의 없음
5. 애매하고 변덕스러운 시스템을 따르는 구성
6.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단, 기능은 그때그때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7. 진부함
8. 줄일수록 안전하다
9. 밑줄과 지움선
10. 조잡한 콜라쥬를 통한 예술적 표현
11. 순수예술 흉내
12. 비트맵으로 최소화
13. 형태는 소프트웨어로부터 나온다.
14. 장식이 뭐예요?
15. 눈에 뻔히 보이는 억제된 표현
16. 될대로 되라
17. 표현 요소를 줄이면 인기를 끌 수 있다
Mr. Keedy 씀
Emigre No. 64, RANT
이지원 번역
흥미진진한 사건 하나 없이 잠잠했던 최근 디자인 사회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이제 해볼 만한건 다 해봤다' 라는 식으로 말한다. 사실이다. 겉모습만 보자면 그렇다. 한때 새로웠던 디지털 흉내내기는 이제 약발이 다했고, 대부분의 '법칙'은 이미 수차례 뒤집혔다. 하지만 누군가 깃발을 꽂은 산에는 아무 볼거리도 없을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금껏 디지털 기술의 도래에 부응해 등장한 시도들은 한결같이 쓸데없는 것들 뿐이었다. 누가 그런 것 따위를 만들든 말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나도 예전에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렇고 그런걸 몇개 만들어 본 적이 있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몇몇 디자이너들이 포스트모던을 표방하며 선보인 실험들로 인해 그래픽 디자인 사회가 공황상태에 빠졌다. 사람들은 이때 유행했던 디자인을 두고 '의도적으로 못생기게 만든 디자인', '혼란스런 디자인',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과 같은 이름을 붙였다.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이 무슨 뜻인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다시 모더니즘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모더니즘은 한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못생긴 디자인'이 유행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픽 디자인은 모더니즘을 시대에 맞게 발전시키고 재규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사로잡혀 있었다. 만약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다른 분야들이 골치썩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폭풍을 쉽게 피해갈 수 있을거라 믿었다. 여기에 디자이너 특유의 무기력증, 모더니즘이 정해준 그리드, 법칙, 시스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만 같은 공포감이 이런 발상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런데 모더니즘이 새로 재편되어 등장할 때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점점 더 냄새를 짙게 풍기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댄 프리드만이 1994년에 주창한 '급진적 모더니즘'(1)은 이전보다 훨씬 유연하고 부드러운 모더니즘을 말한다. 엔드류 블라벨트가 말한 '복잡한 단순화'(2)는 90년대에 유행했던 복잡하고 진부한 디자인과 완전히 대비되는 간단하면서도 인상적인 새로운 모더니즘 방식을 보여줬다. '다시 시작: 새로운 그래픽 디자인 시스템(3)'이라는 책에는 최근 유럽에서 모더니즘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모더니즘의 견고한 사고 방식에 대한 반발은 그래픽 디자인을 방종으로 내몰았다. 디자인 비평가는 1995년에 이미 '포스트모던 스타일'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네덜란드 출신 비평가인 카렐 키텐브라우어는 '새로운 절제주의'라는 글을 통해 당시 비평가들이 관측한 네덜란드 디자인 사회의 분위기를 묘사한다. 이제 그래픽 디자이너는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상황에 주어진 제약을 활용해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작업에 임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들이 회자하는 최근 디자인계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1 모더니즘이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도전을 받아 간단히 무너졌고, 2 이는 곧바로 '방종과 타락'으로 이어져, 3 다시금 단단히 다져진 모더니즘이 돌아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와 같은 간단한 설명으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정한 의미와 가능성을 도무지 알아먹지 못한채 그저 그것의 '타락'한 표현의 일면에만 주목했던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무식함을 은근슬쩍 덮어버리려고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깊이있게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나사 빠진 모더니즘 스타일을 따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모더니즘이 처음 등장한지 80년이 지나서 또 하나의 아류 스타일이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가리켜 '모더니즘 8.0'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모더니즘의 명맥을 그래픽 디자이너의 뼛속에 깊게 되새기려는 투쟁의 대표적인 사례라면 '닷 닷 닷' 매거진(4)을 들수있다. 이 디자인 잡지(아니면 편집인이 말한대로 '잡지가 되기 위한 시도'라고 불러줘야 할까?)는 디자이너에 대해 말하기보다 디자인이라는 개념 자체에 비평적 의문을 제기한다. 여타 디자인 잡지가 즐겨 사용하는 광택지, 여백, 장식적 지면구성, 디자인 화보의 단순 나열에 대해 경멸을 표하고 실제적인 사안을 비평적이고 공격적으로 다루기를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닷 닷 닷은 여전히 하나의 스타일 견본집 이상이 되지 못한다. 닷 닷 닷은 전형적인 모더니즘 8.0 스타일 견본집이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디자인 잡지들이 형태를 재료로 내용을 구성하는 반면, 닷 닷 닷은 내용을 재료로 삼아 형태를 만든다. 그런데 이런 방식에는 문제점이 있다. 어떤 내용을 표현하는 하나의 절대적 형태란 존재할 수 없다.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인식과 개념을 바탕으로 형태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을 추종하는 이들은 개인의 경험을 반영하는 스타일을 최소화 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보편적 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수많은 증거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근본주의자(a)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모더니스트는 취향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스타일이든지 시간이 지나면 퇴색할 수 밖에 없다고 봤다.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모든 형태와 스타일은 언젠가 그 결함을 드러내어 골칫거리로 돌변한다. 당신의 취향은 결국 당신의 약점이 될 것이다. 스타일을 활용함에는 이런 위험부담이 따른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해서 디자이너는 스타일을 철저히 배제한 채 작업에 임해야 한다고 단정짓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고? 익히 알고 있듯이 우리가 '고전'이라고 칭송하는 몇몇 스타일과 형태는 눈에 띄는 요소를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현재의 높은 위상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이 언젠가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표현으로 비춰지게 될거라 울부짖으며 자학이라도 해야 하는건가. 스스로를 극도의 절제력으로 옭아메야 한단 말인가.
모더니즘 8.0은 이런 스타일 혐오증과 사이비 과학에 근거한 거짓 객관성을 동시에 포괄한다. 그리고 여기에 60년대와 70년대에 유행했던 '뭐든지 옳다'라는 식의 상대주의적 관점도 덧붙여진다. (나팔바지가 유행했던 시절의 얘기다) 이와 같은 접근방법이 과거에 한번 제대로 실패한 적이 있다는 사실쯤은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역사 속에서 상대주의적 기능주의는 간혹 실랄하고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 적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저 다듬어지지 않고, 제한되고, 단조로운 콘셉과 형태를 통해 드러나는 황량한 시각 언어 이상의 어떤 것이 되지 못했다.
실용성은 그래픽 디자인의 필수 조건이다. 디자인이 예술이나 종교가 아닌 '디자인'으로 구분되는 이유는 바로 이 실용성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얼마나 유용하냐라는 기준만으로 디자인의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다. 기능을 근거로 한 객관적 디자인은 주관적 가치 평가 없이는 아무데도 이르지 못한다. 객관적 표현과 최소화한 형태에 대한 그릇된 신념에 현혹되어 디자이너는 모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명확한 표현이 존재하리라는 환상을 품었으며, 이에 따라 하나의 협소한 편견(모더니즘 스타일)을 전세계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인 양 퍼뜨리는 잘못을 범했다.
모더니즘 8.0은 양쪽 세계의 가장 좋지 않은 면만을 골라서 취한다. 모더니즘의 시스템, 최소화, 독선적 스타일을 따르면서,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적 관점, 수준낮은 취향, 현학적인 자기 중심주의를 내포한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은 최소한의 방어책 밖에 될 수 없다. 대담하다거나 혁신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기껏해야 가까스로 목표를 완수하는 정도가 시스템이 할 수 있는 전부다. 또한, 청소년을 위주로 돌아가는 대중문화로 인해 디자이너는 그저 새롭고, 멋지고, 반항적인 표현만을 진부하게 답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서로를 자극할 만한 작업이 나오리라 기대할 수 없다.
주제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두고 쿨한척 하고 싶은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은 근원없는 짝퉁일 뿐이라는 생각을 품는 사람들에게 모더니즘 8.0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그들은 '디자인 냄새'를 풍기는 것이라면 덮어놓고 싫어한다. 왜냐면 디자인된 것은 모두 '가짜'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저능아같은 발상이다. 이런 식으로 단정짓기에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사람들의 성향은 한없이 다양하다. 인간은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그곳에 깃든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은 특수하고 개인적인 표현을 통해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활동이다.
간단히 말해, 디자인을 하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일 뿐이다. 이는 일찌기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원시적인 상태에 대한 향수다. 여느 다른 환상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는 간단한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역설적인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게 하는 함정이 도사린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디자인은 간단한 용어로 정의할 수도, 없는 것처럼 무시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이다.
귀엽게 만들기 (Cuteism)
귀엽게 치장하는 방법은 모더니즘 8.0이 고유의 차갑고 딱딱한 성향을 완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 스타일이다. 마치 브루어 의자(b)에 분홍색 커버를 입히듯이 모든 것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온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모더니즘이라는 케익 위에 뿌린 별사탕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귀여움은 강한 권력을 연상시킨다. 귀여움의 원조는 어린아이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나약함을 보며 자신의 힘을 확인한다. 이런 방법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이게 속임수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여지없이 행복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타인의 나약함은 나의 상대적 강함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동정심을 유발한다. 참으로 귀여운 수작이지 않은가?
추하고 거친 세상 속에 귀엽거나 속물스런 이미지를 내놓는다고 해서 그걸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냥 괜찮다고 인정할 수 있을만큼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특히 어른들이 이런 귀여움에 집착하는 경우엔 더 그렇다. 디지털 혁명이 시작되던 시점에 그래픽 디자이너는 글자, 음향, 모션의 개념을 새롭게 규정하는 비선형적 하이퍼텍스트를 관장하는 역할을 맡게 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웅대한 포부는 무너졌다. 지금 우리 눈앞에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만화영화들이 널려져 있을 뿐이다.
사태가 이렇게 진행된 데에는 컴퓨터가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수많은 디자이너의 표현 능력이 단순한 형태(유아적 스타일)에 제한된 채, 장식을 활용한 시각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불구가 된 현재 상황을 컴퓨터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요즘 디자이너는 그리스, 중국, 켈트 스타일에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지 대답하지 못한다. 요즘의 장식 스타일에조차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그저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제조해 내기에 바쁘다. 굳이 말하자면 이것이 모더니즘 8.0의 고유 문화라 할 수 있다.
지금은 고전이 된 오웬 존스의 1856년 저서, '장식의 법칙(5)'이라는 책에는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한 글귀가 있다.
"사각형과 원을 이용한 구성은 단순하고 따분하기 이를데 없다. 기본 구성단위가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정한 간격과 구획을 따르는 쉬운 구성은 이보다 훨씬 많은 정신 노동을 요하는 구성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 예술이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시기에 만들어진 모형과 장식은 원뿔 모양과 같은 복잡한 곡선을 담고 있는 반면, 예술이 쇠퇴하던 시기에 등장한 장식은 컴파스로 그린것 같은 단순한 형태가 주를 이룬다. 이는 세계 어디를 가나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표현의 기본단위가 몇 안되는 단순한 형태로 제한됐기 때문에 최근 서양 문명이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설명은 충분치 않다. 하지만 최소의 형태가 최소의 기술과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말이 된다. 오래전 최소 단위 형태만으로 작업한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을 돌아보라. 베거스테프 형제라든지, 어프리 버슬리, E. 나이트 맥카퍼와 같은 이들의 작품은 그래픽 제조 기술이 월등한 요즘 시대에 나오는 그 어떤 그래픽과 비교해도 감정의 깊이와 형태의 수준에 있어서 매우 월등하다. 그들의 작업은 가장 축소된 형태로 구현됐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담긴 사상과 감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그들의 작품에 있어 기하학적 구조와 절제된 색채는 복잡한 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그 자체가 목적이지 않았다. 요즘은 반대다.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 목표가 되고 있다. 콘셉트가 형태로 치환된다. 모든 것이 액면 그대로일 뿐, 깊이 있는 의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귀엽게만 만들면 장땡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틀렸다. 귀여운 표현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그게 꼭 귀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사이비를 제조하는 그래픽
디자인은 단지 스타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활동이라는 사실을 떠들어대고 싶을 때, 디자이너는 거짓된 유식함으로 포장한 그래픽을 만들며 유난을 떨곤 한다. 학술지를 흉내내어 속내용을 표지에 그대로 노출하기, 한 지면을 아이콘 크기로 축소해서 통계 도표처럼 위장하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복잡하게 토해내서 좀 있어 보이게 만들기. 이런 현학적 치장이 바로 거짓 멋부리기 방법에 해당된다.
모더니즘 8.0이 내포하는 최소주의와 기능주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옛것을 폐기하고 새것을 쫓는 갈망은 거짓된 지적 접근이라는 방법론을 낳았다. 나는 이것을 두고 '사이비 그래픽'이라고 부른다. 얼핏 보기엔 진지한 정보를 바탕으로 구성한 그래픽인가 싶다. 형태의 표현보다는 정보를 구성하는 방법 자체가 곧 시각적 유희로 연결됨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디자인이 자랑하는 '시스템'은 사실 보는 사람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거짓부렁이다. 이런 그래픽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래픽의 세부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지, 결코 정보 구성 방식이 획기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포스트모던 초기에 튀어나온 최악의 실험들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뭔지 모르게 유식해보이고 왠지 어떤 의미가 있을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쭉정이일 뿐이다. 보는 사람에게 감동이 아닌 분노를 선사하는 그래픽이다.
요즘 사람들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는 현실을 생각해 볼때 정보라는 개념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되는 상황은 전혀 이상할게 없다.(6) 그런데, 디자이너는 작업에 임하며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와 가공된 '정보'라는 서로 다른 두 개념을 구분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데이터를 마치 정보인 양 이해하고 취급하려 한다. 많은 디자이너가 이러한 날것의 데이터로부터 아이디어와 사상을 도출해 낼 수 있을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이 생산하는 이른바 콘셉트 위주의 작업이란 것들을 살펴보면 이런 믿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디자인은 아이디어와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이라는 발상은 낡아도 너무 낡은 헛소리다. 외부 사람들은 이런 헛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비웃는다. '그래픽 디자이너란 인간들은 자신이 만든 기발한 그래픽과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허무개그를 지어내어 그걸로 지식 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착각속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구나'
사이비 디자이너는 너무 겁쟁이거나 혹은 너무 게을러서 스스로 어떤 의미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스타일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신의 관점을 감춤으로써 보는 사람이 직접 검색 엔진을 가동해 의미를 찾아내기를 요구한다. 환장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과 참을성을 발휘해서 이러한 사이비 그래픽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있다면, 이따위 것을 열심히 들여다 봐야 괜한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교훈 정도가 고작이다.
진정한 그래픽 디자인 전문가는 시각적 소통을 풍부하고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창조적 활동이다. 어떤 디자이너는 스타일을 빼내면서 이러한 창조성까지 함께 내다 버린다. 욕조의 물을 버리면서 그 안에 있는 아기까지 함께 버리는 꼴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이 최신 유행에 민감하고 콘셉트를 다루는 작업을 한다며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한결같이 텅빈 욕조처럼 보일 뿐이다. 이런 경우 디자이너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평가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면 디자이너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생각했을때 디자인 과정에서 디자이너를 빼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디자인 하지 않은 디자인,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남은 마지막 보루
아무것도 새로울게 없다고 생각하는 디자이너, 스타일을 문제 해결의 부산물 따위로 폄하하는 디자이너, 모더니스트의 허풍에 사로잡힌 디자이너. 이들은 스타일에 딸려오는 귀찮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 방법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이 움켜잡고 있는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란 실제로 불가능하다. 무심히 내버려뒀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선 우선 그렇게 보이게끔 해주는 시스템과 구조를 계획해야(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타일 없는 스타일은 디자인을 하지 않은 듯 보이게 하는데 그 목표가 있다. 디자이너가 표현을 해서도 안되고 솜씨와 전문성을 보여서도 안된다. 그냥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디자인을 하게 놔둬야 한다. 새롭거나, 멋지거나, 애매하거나, 옛스럽거나, 역사적인 글꼴을 써서도 안된다. 그저 평범한 이미지와 대강 그린 듯한 도표, 그리고 거기에 그리드와 헬베티카를 사용해야 한다. 빈곤함으로부터 억지로 가치를 찾으려하고, 수정같이 투명한 술잔을 스티로폼 컵으로 둔갑시키려 하는 거짓된 기능주의가 지금 여기에 있다.
어떤 이들은 모더니스트의 자부심이었던 줄임의 미학을 내세운다. (동양에서 베껴온 사상) 그러나 어떤 주제에 깃든 멋진 요소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그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단순한 뭔가로 둔갑시키기는 미학이 아니라 그냥 멍청한 짓이다. 이것이 한물 간 모더니즘의 실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대학에서 공부한 디자이너는 이러한 낡은 스타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단속하고 작업의 구석구석을 신경써서 살펴야 했다. (모더니즘을 벗어나기 위해 모더니즘식 교리를 따랐던 것이다) 반면 아마추어 디자이너는 엉터리 모더니즘으로부터 탈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닷 닷 닷 잡지는 얼핏 보기에 그래픽 디자인에 아무 관심 없는 사람이 만든 듯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까다로운 디자이너의 손길을 통해 스타일 없는 스타일이 철저하게 적용됐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자연스러움은 억지로 가장할 수 없다. 디자인을 감춘 디자인 방식이 흥미롭고, 모더니즘식 전방위적 전통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하다. 그러나, 이 작업이 결국 그들을 어디로 데려다 줄지, 그래픽 디자인 사회를 어디로 인도할지는 여전히 미심쩍다. 사상과 사회정치적 논의만 중요하고 스타일과 형태를 통한 소통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면, 디자이너는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비평적으로 생각하고 최초의 데이터를 유용한 정보로 구성하는 일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사회 정치적 사상에 대한 논의는 그래픽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동참해야 할 일이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을 가지고 디자이너가 생색낼게 뭐란 말인가. 지금까지는 그래픽 디자이너는 시각 소통에 관계된 매체의 생산 수단을 거머쥠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간신히 지켜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상황도 오래가지 못할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이에 그래픽 디자이너는 앞으로 자신의 역할을 무엇으로 규정해서 사회로부터 분야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21세기 문화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특화된 분야를 꼽으라 한다면 그건 분명 따분한 모더니스트의 따분한 모더니즘 프로젝트는 아닐 것이다. 모더니즘식 디자인은 초기 디지털 기술과 후기 세계자본주의가 알아서 떠맡아 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소비주의 대중문화는 모더니즘을 이미 받아들였다. 더이상 디자이너가 그 신념을 이끌고 나가야 할 이유가 없다.
기업 브랜드라든지, 세계화 전략, 문화 기관의 표현수단으로는 모더니즘이 제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에게 모더니즘은 너무 지겨워졌다. 모더니즘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 유산과 다양성을 외면하며,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복잡하고 뒤얽힌 경험을 대변해 주지 못한다. 기술이 강력하게 발달함에 따라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모더니즘의 집요한 편견에 도사리는 위험도 함께 증가하는 중이다. 이제 모더니즘의 실패를 인정할 때가 됐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냉소적이고 방관적인 자세를 버리고 우리가 처한 포스트모던의 현실을 비평적이고 낙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초기 모더니스트들이 예견했듯이, 이제 예술은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이제 디자인이 실질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분명 이번 세기 안에는 모든게 제대로 자리 잡을 것이다. 단지 모든 사람이 이 현실을 인식하는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데 과연 누가 이런 움직임에 시동을 걸 것인가. 무기력한 디자인 단체? 광고 디자인 회사? 고립되고 비겁한 디자인 학교? 생색내기 바쁜 문화기관? 생계에 메달린 디자인 전문가들? 아니면,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어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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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 키디는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디자이너이자 비평가, 타입디자이너, 교육자이다.
* 역자 이지원은 번역하는 중에 속이 후련해짐을 느꼈을 정도로 이 글에 깊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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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Radical Modernism, Dan Friedman, Yale University Press, 1994.
(2) "Towards A Complex Simplicity," Andrew Blauvelt, Eye magazine, No. 35, Vol. 9, Spring 2000.
(3) Restart: new Systems in Graphic Design, Edited by Christian Küster and Emily King, Thames & Hudson 2001.
(4) Dot Dot Dot Magazine, Broodje & Kaas Publishing, NL, UK, DE, 2000.
(5) The Grammar of Ornament, Owen Jones, first published in 1856 by Day & Sons, Lincoln's Inn Fields, London. Published in the United States by DK Publishing, inc. 2001.
(6) Karim Rashid, the hip industrial designer of the moment, has coined the term "info-thetics," — the aesthetics of information. Although he says it is easier to do two dimentionally, he is trying to do 3D info-thetics design "that can say something about the digital age." IdN magazine, No. 2, Vol. 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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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a) Fundamentalism
(b) Breuer Chair: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마르셀 브루어가 디자인했다. 최소한의 철제 구조와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졌다. 바우하우스 교수였던 바실리 칸딘스키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후일 이탈리아에서는 칸딘스키의 이름을 따서 바실리 의자(Wassily Chair)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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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뒷편에 실린 부록 도표
옛날 모더니즘
1. 흑백과 원색 위주에 가끔 별색 하나
2. 헬베티카
3. 여백
4. 아이디어, 모두가 이해 가능한 시각적 익살
5. 구체적 시스템을 따르는 구성
6.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7. 형태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
8. 줄일수록 풍부해진다
9. 직선
10. 콜라쥬를 통한 예술적 표현
11. 순수예술 흉내
12. 기하학적 최소화
13. 형태는 내용으로부터 나온다
14. 장식은 범죄
15. 순수한 추상 표현
16. 정교한 장인정신
17. 줄임의 미학
모더니즘 8.0
1. 흑백과 별색 위주에 가끔 원색
2. 헬베티카
3. 여백
4. 아무도 이해 못하는 시각적 난리법석. 아이디어는 거의 없음
5. 애매하고 변덕스러운 시스템을 따르는 구성
6.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단, 기능은 그때그때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7. 진부함
8. 줄일수록 안전하다
9. 밑줄과 지움선
10. 조잡한 콜라쥬를 통한 예술적 표현
11. 순수예술 흉내
12. 비트맵으로 최소화
13. 형태는 소프트웨어로부터 나온다.
14. 장식이 뭐예요?
15. 눈에 뻔히 보이는 억제된 표현
16. 될대로 되라
17. 표현 요소를 줄이면 인기를 끌 수 있다
2009.09.16 12:16:20
푸하하하 재밌네요.
모더니즘이고 뭐고 내용이고 뭐고간에
귀엽게 하려면 머리를 크게 만들면 됩니다. ㅋㅋ
다 만들어 놓고 나서 그리고 논리를 세우면 되죠.
그리고 적당히 어물쩡 타협합니다.
저녁에 친구랑 약속이 있거나 집에 빨리가고 싶거든요. ㅋㅋ
재밌는 번역, 정말 공감 백배하며 잘 읽었습니다.
이러다 '번역도사'가 되시겠습니다.
아래 내용은 퍼가도 될까요?
모더니즘이고 뭐고 내용이고 뭐고간에
귀엽게 하려면 머리를 크게 만들면 됩니다. ㅋㅋ
다 만들어 놓고 나서 그리고 논리를 세우면 되죠.
그리고 적당히 어물쩡 타협합니다.
저녁에 친구랑 약속이 있거나 집에 빨리가고 싶거든요. ㅋㅋ
재밌는 번역, 정말 공감 백배하며 잘 읽었습니다.
이러다 '번역도사'가 되시겠습니다.
아래 내용은 퍼가도 될까요?
2009.09.16 16:16:08
디자이너 또한 아무리 자신의 생각과 개성을 표현하려해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흐름 그리고 앞으로의 진행될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디자이너가 단지 사물을 예쁘게 포장하는 사람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을 극복시키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스스로가 변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표현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디자인은 스타일이 아니라 아이디어에서 나온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요즘 대중들은 스타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는 디자이너는 스타일 추구자일까요 반짝반짝 아이디어맨일까요
디자이너가 단지 사물을 예쁘게 포장하는 사람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을 극복시키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스스로가 변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표현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디자인은 스타일이 아니라 아이디어에서 나온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요즘 대중들은 스타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는 디자이너는 스타일 추구자일까요 반짝반짝 아이디어맨일까요
2009.09.16 16:32:43
안녕하세요. 매번 디자인 읽기에서 보기만 하다가 처음 답글을 남겨봅니다.
공감&뜨끔&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알려주고 긁어준 후련함? 을 느꼈습니다.
좋은 내용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공감&뜨끔&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알려주고 긁어준 후련함? 을 느꼈습니다.
좋은 내용 정말 잘 읽었습니다^^
2009.09.17 14:15:34
음. 첨엔 좀 통쾌하게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좀 침울해 지는군요.
아방가르드(전위대)의 부활을 다시 꿈꿔야 하는 건가요?
글에 공감하면서 미래에 디자이너가 살아남기 위한 전위대가 필요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전위대가 과연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괜히 따라가다가...
"아... 이산이 아니라 저산인가 보다...." 하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과거에 늘 그래왔던것 처럼요
다시 읽으니 좀 침울해 지는군요.
아방가르드(전위대)의 부활을 다시 꿈꿔야 하는 건가요?
글에 공감하면서 미래에 디자이너가 살아남기 위한 전위대가 필요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전위대가 과연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괜히 따라가다가...
"아... 이산이 아니라 저산인가 보다...." 하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과거에 늘 그래왔던것 처럼요
2009.09.18 17:39:51
'당신이 그저 비상한 재간둥이일지, 아니면 혁명 전야까지 영원히 어둠 속에서 디자인할 게릴라일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죠.'
라고 임근준선생께서 모 싸이트에서 (익명의 디자이너에게) 했던 얘기였는데, 딱이군요.ㅋ
라고 임근준선생께서 모 싸이트에서 (익명의 디자이너에게) 했던 얘기였는데, 딱이군요.ㅋ
2009.09.22 13:54:46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요즘 제가 하고 있는 디자인이 딱 저 모더니즘8,0부록 도표에 나와있는걸 따라하려고 전전긍긍하는것 같습니다. 유행이라도 완성도있게 따라가는게 어디? 라고 스스로 타협하는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요즘 제가 하고 있는 디자인이 딱 저 모더니즘8,0부록 도표에 나와있는걸 따라하려고 전전긍긍하는것 같습니다. 유행이라도 완성도있게 따라가는게 어디? 라고 스스로 타협하는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