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
내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은 본질을 파악하는 디자인 그리고 오래가는 디자인이다. 두 가지로 나눠놓기는 했지만 어떻게 보면 한가지일 수 있고, 한가지 개념으로 딱 잘라 설명하는 것은 너무 포괄적일 수 있어 두 가지로 나눴다. 두 가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개념이다. 본질을 파악하여 디자인 하면 오래간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본질을 파악하여 디자인 한다는 것과 오래가는 디자인을 하는 것은 다른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세월을 아울러 모든 세대에게 사랑 받는 디자인을 하는 것은 본질을 파악하여 내용의 맥락에 맞게 디자인 하여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지만 오래가는 디자인을 하는 것은 딱히 오래가는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해서 그 생명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본질적인 디자인이 오래가는 디자인을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디자인이라는 것 자체가 유행에 민감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식상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는 디자인 자체가 존재하기 힘들다. 오래 지속 될 수 있는 것은 최초의 어떤 것을 만들어 내거나 하는 거창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일상적인 소박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트랜드만을 따르는 디자이너들은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험하다기 보다는 언제나 따라가기밖에 못하는 추격적 인생밖에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자체를 하나의 상업적 상품으로밖에 여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좋은 디자인은 어떤 특정 스타일이나 작품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조금 더 개념적인 것, 이론적인 것에 가깝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상관없이 어느 세대에서든 어느 곳에서든 보는 사람이 만든 사람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픽 디자인 내에서는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내용과는 무관한 채 지나치게 형식에만 신경 쓰는 경향 탓에 내용의 맥락과는 무의미하게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세태를 비판하고자 한다. 특히 편집 디자인 분야의 이런 경향은 심각한 상태라고 본다. 다른 분야의 디자인은 매체나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많은 영향을 받고 스타일이나 겉모습에 대부분 치중하여도 별 무리가 없다고 본다. 물론 영상에서 스토리에 맞지 않는 과도한 이펙트들은 빈약한 스토리라인을 메우기 위한 보여주기만을 위한 방식이라고는 하더라도 그것이 관객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하지만 편집 디자인의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편집을 하기 위한 저자의 내용이나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향과는 맞지 않게 그저 보는 사람을 더욱 자극하기 위해 남들 것보다 튀어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얕은 고민 속에 깔끔하게 정리된 텍스트와 읽기 힘들게 작아진 텍스트의 크기, 그리고 병렬 방식에 맞춰 짜인 이미지들 속에서 텍스트의 내용과는 그저 무관한 줄 맞추기 식의 디자인이 남발한다.
한 꼭지의 레이아웃에 의한 분위기는 그 원고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형식적인 것만 보기 좋아서 보고 베끼는 데에는 아무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는 디자인에는 감동도 없다. '어떤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인가?'하는 물음에, '보는 순간 "앗 나도 할 수 있었는데, 바빠서 못했네"라고 할 수 있게 만드는 디자인, 얄밉고 약 오르면서 감동이 느껴지는 것.'이라고 ‘정 디자인’의 대표 정병규씨는 말한다. 본질을 꼬집어 내어 표현하면 보는 사람의 반응은 정말 간단하다. 그냥 순응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할 말 없게 설득 시키면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용의 이해가 우선시 되어 형식에 반영되어 내용이 형식으로 될 수 있고 형식이 내용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 되어 그것이 서로 다른 별개의 요소로 보여지지 않는 것이 좋은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말 할 수 있는 것은 오래가는 디자인이다. 본질적인 것을 우선시 할 때 나올 수 있는 효과인 것 같다. 내용을 형식적으로 충분히 표현 했을 때 그 디자인의 생명은 길어진다. 디자인의 역사란 것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무수히 많은 양식의 변화를 거듭한다. 대중들의 눈이 하나의 양식에 금방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마치 대중 가요나 계절마다 나오는 패션처럼 (사실 그것보다는 길다고 볼 수 있지만) 거듭된 변화에 변화를 사회가 요구한다. 조만간 지금의 시대정신은 교체된다. 각각의 시대마다 그 시대를 상징하는 시대정신이 있다. 그것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대중들 개중에 의식이 있는 소수들 소위 ‘트랜드세터’라 불리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 ‘트랜드세터’를 자극하는 이들이 디자이너들이다.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베스트셀러들이 있다면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서든 사랑 받는 스테디 셀러가 있다. 고전은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어느 시대에서든지 어느 장소에서든지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디자인에 고전으로 규정해서 부를 수 있을 만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은 아직 없지만 이제 곧 차츰 생겨 나갈 것이다. 오랜 기간 많은 대중 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이미 전설화 되어가 가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틈에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설 무대가 없다. 이웃의 일본만 해도 경우는 다르다. 수많은 일본 디자이너들은 그들이 이룩한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일본을 나아가서 선진국의 디자이너나 평론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다. 그만큼 수준이 다르다.
결론적으로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디자인이라는 것은 본질을 파악하면서 오래가는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공간적인 개념이고 오래가는 디자인은 시간적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두 가지의 개념이 따로 떨어져 각각 작용하는 것은 두 개념이 상충하여 시너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보다 효과가 미비하다.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음과 양이 서로 떨어질 수 없듯이 시간과 공간은 하나이고 본질적인 것을 파악하여 눈으로 보여지는 가시적인 것과 오랜 생명을 유지하는 비가시적인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음과 양의 서로 대등한 비중보다는 음양과 오행과 같은 좀 더 포괄적이면서 함축적인 것이 본질을 파악하는 디자인으로 볼 수 있고 시간적으로 오래가는 디자인을 부수적인 오행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본질을 파악하며 오래 갈 수 있는 디자인은 한국의 전통성을 지닌 채 그것을 발전시켜 나아가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성리학 아니면 그 이전의 한국인의 삶 속에 녹아있는 사람들의 사상이나 그들이 중요시 하다가 생각하는 개념 혹은 전통의 방향성을 제시한 디자인이 세계적으로도 호응을 얻을 것이고 그만큼 오랜 기간 역사 속에 기억 될 것이라 생각한다.
형식과 내용에 대한 고민과 함께 더불어 저는 말하고싶은 메세지가 있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내가 이 디자인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시질문을 던져보면 형식과 내용에 균형을 맞추고 절제하게 됩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만들기와 표현하기 또는 생각하기에 급급합니다. 오래봐도 질리지않고 누가보면 내가할수도 있는데라고 만드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인것은 보는이들이 공감을 하기때문이겠죠.
그 러나 실제로 작업을 해보면 그렇게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수많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기때문입니다. 그런 유혹은 말씀하신 스타일이나 지나친 형식뿐만아니라 제 생각엔 작위적인 내용의 해석도 도사리고 있다고봅니다. 작은 책하나를 디자인하는데에도 무수한 유혹이 넘쳐납니다.
어떤 종이를 쓸까에도 무수한 종이들이 유혹을 합니다. 글자도 유혹을 합니다. 이미지도 유혹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유혹에서 내가 가야할 길을 만드는것은 내가 해야할 메세지가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형식과 내용을 이어주는 본질을 찾게되는것같습니다.
최근에 디터람스라는 제품디자이너의 작업을 영화로 다시보게 되었습니다. 몇십년이지난 디자인이었는데도 애플의 아이폰보다 더 아름다워보였습니다. 여기서 아름다움은 본질을 가진 무엇인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앞에 우리는 본질을 접하고 보게되고 그리고 말로표현할 수 없는 암묵적인 감동을 받게되는것 같습니다.
책을 디자인하는 저에게도 그런 본질은 일맥상통한다고봅니다. 다만 아직도 힘든것은 한국적인 본질을 작업에 담아낸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한국적이다는것에 이리저리 헤매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세상은 한국이라기보단 모든것이 집결된 E마트같습니다.
유혹이 넘쳐나는 이세상에 하나사면 2개를 더주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정작 무슨 요리를 만들려고 마트를 갔는지 까먹게됩니다.
집에돌아오면 국적불명의 음식을 하고있을때도 있고요.
말씀하신
"한국인의 본질을 파악하며 오래 갈 수 있는 디자인은 한국의 전통성을 지닌 채 그것을 발전시켜 나아가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를 좀더 풀어서 설명해 줄수있으신지요? 특히 전통성이란 부분은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개념입니다. ^^
하지만 한국의 전통이라고해서 한국에서만 발생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한국의 전통은 중국의 영향을 비롯해 고대 그리스의 영향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섞이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최범 선생님의 말씀을 빌려보자면
지금의 한국이라는 나라는 수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고 봅니다.
좋은 문화를 받아들여 그것을 전통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죠 그럼으로써 문화 사유자와 행위자가 일치하지 않는
식민지적 주체일 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강조하신 것은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외국의 문화를 자신의 문화와 융합시키고
새로운 자신들화 된 문화를 생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했습니다.
단적인 예로는 석굴암을 볼 수가 있죠
모든문화의 총집합체이니까요
한국의 전통성을 지닌 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부분은 그것입니다.
한국만의 것으로 발전시켜나가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통일 신라가 그랬던 것처럼, 고려와 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선진국의 문화를 들여오되 그것을 충분히 공부하고 해석하여
우리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만의 것으로 발전시킨다면
그것인 한국의 전통성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본질적인 부분은 워크룸에서 출판된
"폴랜드와의 대화"를 읽어보시면 어느정도 언급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룡님의 얘기처럼 본질은 곧 메세지가 될수 있고
그것을 잘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동감합니다.
결국은 그 본질을 파악해 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본질에도 트랜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되고요.
한국의 전통성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참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야나기의 한국미는 야나기의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나온 이야기이고,
현대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지도 혼란스럽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본질과 실증주의에서 말하는 본질에
과연 트랜드가 있을까요?
트랜드는 그저 트랜드라고 생각하고 싶네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언급해 주신대로 본질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 개개인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그 가치마다 본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지금 현대에 확립된 한국미는 확실이 야나기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통성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할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다시 최범선생님의 말씀을 언급하게 되는데요
(제가 영향을 받은 대부분이 최범 선생님이라서요)
한국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변하는 것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누가 한국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가
그것은 바로 한국인이 되겠죠
야나기 무네요시와 같은 외국인이 아니라요
어제 수업 때 안보이시던데
바쁘셨나봐요
어제 수업을 같이 들으셨으면
이것에 대한 이야기가 좀더 수월해졌을텐데
정말 아쉽네요
'변하는 것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한다' 이 말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이런 것이 있나요? 하나가 변하면 분명 모든 것이 변합니다. 이건 생태계의 원리입니다.
아리스톨텔레스는 확실히 본질을 그렇게 말했습니다.
플라톤 선생께서는 더 심하게 본질을 말했고요. (실제하는 본질이 없다고 했나...???)
본질에 대한 논란은 우리가 아는 한, 그리스에서 부터 지금까지 침튀기며 싸워왔죠.
동양의 느긋한 사상가들은 그 본질을 자연과 인생의 흐름에 맡기는 지혜를 발휘했죠.
예전엔 저도 아리스토 선생님에 무척 공감했었는데 점차 갈수록 본질은 어쩌면 허상이라고 생각하는게 나을수 있다로 바뀌었습니다. 좀더 플선생님에 가까워진거죠. 저도 디자인을 할때 그 본질을 운운하며 그것에 맞추려는 노력을 합니다. 그래야 클라이언트에게 좀 있어보이거든요. 훗. 하지만 그 본질이라고 하는 것이 이사람 말하고 저사람 말할때 마다 바뀌는 것을 보면서 본질에 대한 확신이 점점 없어지는 기분입니다.
'본질이 본질을 잃었다고 할까요?'
저도 애매한 문장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
ps. 어제 수업을 같이 들었다면 저도 최범 선생님에게 영향을 받아 비슷한 입장이 될 수 있었는데,
안타깝습니다. 나중에 좀더 자세히 들려주시죠.
본질에 다가가면 다가가려 할수록
현실과는 동떨어진 다는 것이죠
현실과 본질 두가지를 다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 것이라고 볼 수 있고요
어떻게보면 본질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할수도 있고요
근데 제가 생각하는 본질이라는 것은요
시대가 지나도 시간이 지나도 보는 사람의 공감을 여전히 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폴랜드의 디자인은 지금봐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특히 명화같은 것은 더 오랜 시간동안 더 많은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 내자나요
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이란 것을 분명히 전제해 두었던 거고요
그래도 진지하게 저의 헛소리와도 같은 말을 같이 고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특히 컬러는)은 알고보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다시 가져온 것이라고도 하구요....
우리의 전통에서 우리의 본질을 찾는 게 맞긴한데,
우리의 전통이란 거 자체가, 현대로 넘어오면서 제대로 정리가 안된게 사실인거 같아요.
한국적 디자인이란 화두는 정말 너무 뻔한 화두이면서도, 사실상 제대로 된건 하나도 없고.
전 요즘, 일단 ....... 동양철학부터 공부해야하는게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_-;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전통성의 실체, 그게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그것도 아직 잘 모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