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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란? 질문에 대답한 적이 있습니까?
질문을 할때는 나름 어느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대답하는 사람은 어느정도 고민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참 하기 어려운 질문이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혼자서 대답하면 조금 마음이 편합니다.
자꾸 반복하다 보면 의미있는 대답이 나올수 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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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란?
유용하고 의미가 있는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직관적이고 의식적인 행위, 결과
질문을 할때는 나름 어느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대답하는 사람은 어느정도 고민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참 하기 어려운 질문이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혼자서 대답하면 조금 마음이 편합니다.
자꾸 반복하다 보면 의미있는 대답이 나올수 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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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란?
유용하고 의미가 있는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직관적이고 의식적인 행위, 결과
2008.11.25 18:35:43 (*.176.97.99)
안그래도 오늘 "형한테 디자인이란 뭐유"하고 물을까 싶었는데..
디자인의 "감성적 센세이션"이란 어떤 의미유? 질서로 규정지어지는 디자인의 정의 안에서?
디자인의 "감성적 센세이션"이란 어떤 의미유? 질서로 규정지어지는 디자인의 정의 안에서?
2008.11.25 23:39:22 (*.161.192.184)
이거 "감성적 센세이션"의 의미를 모르니 대답하기가 어렵군...
만약 감성적 센세이션의 표면적 의미로만 접근한다면
우리가 질서를 부여할때 정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신선한 새로운 접근으로 납득할만한 질서가 부여되어 그걸 보자마자 감탄을 유발하는 것이 "감성적 센세이션"이 아닐까?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니체의 새로운 철학의 정립, 복잡계 등 이런 것들이 감성적 센세이션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요? 짧은 지식과 지혜로 대답할려니.... 끙
여튼 이런 것들이 감성적 센세이션이라면 디자인에서는 산업디자인 100년의 역사에서 나타났던 수많은 디자인 사조들을 "감성적 센세이션"이란 딱지를 붙힐수 있겠군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디자인은 감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성의 영역이 더욱 크다고 생각하기에 단순히 감성적 센세이션으로 디자인을 규정하기는 어렵단 생각이 드네요
이지원 선생을 비롯한 다른분들의 생각이 궁금하군요
당신 생각도 궁금하군요(질문자체가 뭔가 담고 있는 듯...)
만약 감성적 센세이션의 표면적 의미로만 접근한다면
우리가 질서를 부여할때 정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신선한 새로운 접근으로 납득할만한 질서가 부여되어 그걸 보자마자 감탄을 유발하는 것이 "감성적 센세이션"이 아닐까?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니체의 새로운 철학의 정립, 복잡계 등 이런 것들이 감성적 센세이션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요? 짧은 지식과 지혜로 대답할려니.... 끙
여튼 이런 것들이 감성적 센세이션이라면 디자인에서는 산업디자인 100년의 역사에서 나타났던 수많은 디자인 사조들을 "감성적 센세이션"이란 딱지를 붙힐수 있겠군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디자인은 감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성의 영역이 더욱 크다고 생각하기에 단순히 감성적 센세이션으로 디자인을 규정하기는 어렵단 생각이 드네요
이지원 선생을 비롯한 다른분들의 생각이 궁금하군요
당신 생각도 궁금하군요(질문자체가 뭔가 담고 있는 듯...)
2008.11.26 01:26:35 (*.82.185.245)
감성적 센세이션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궁금하네요.
윤여경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질서'란 개념은 사회구성원의 보편적인 이해범위에서 나오는 것이겠죠. 그리고 '센세이션'은 보통은 예상하기 힘든 어떤 새로운 것으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때 생겨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점에서 센세이션은 보편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새로워봤자 공감을 얻지 못하면 센세이션이 일어나지 않죠. 이 두 가지, 보편성과 참신성을 양립시키기는 외줄타기와 같이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 한 가지를 내던지게 되죠. 디자이너로서 일을 함에 있어서 그 부분을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감성적' 이란 말이 붙었습니다.
감성적 센세이션... 이성과 감성.
디자인에 있어서 이성과 감성은 무엇입니까?
이것에 관련해 상황을 설정하고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 저는 사람들이 선물 받아서 좋아할 만한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티셔츠에 어떤 무늬를 인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티셔츠를 좋아했습니다. 티셔츠의 기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티셔츠를 통해 제가 무슨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이건 디자인입니까? -
답변 기대.
윤여경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질서'란 개념은 사회구성원의 보편적인 이해범위에서 나오는 것이겠죠. 그리고 '센세이션'은 보통은 예상하기 힘든 어떤 새로운 것으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때 생겨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점에서 센세이션은 보편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새로워봤자 공감을 얻지 못하면 센세이션이 일어나지 않죠. 이 두 가지, 보편성과 참신성을 양립시키기는 외줄타기와 같이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 한 가지를 내던지게 되죠. 디자이너로서 일을 함에 있어서 그 부분을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감성적' 이란 말이 붙었습니다.
감성적 센세이션... 이성과 감성.
디자인에 있어서 이성과 감성은 무엇입니까?
이것에 관련해 상황을 설정하고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 저는 사람들이 선물 받아서 좋아할 만한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티셔츠에 어떤 무늬를 인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티셔츠를 좋아했습니다. 티셔츠의 기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티셔츠를 통해 제가 무슨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이건 디자인입니까? -
답변 기대.
2008.11.26 10:30:39 (*.234.154.2)
아... 그렇군요. 센세이션에 보편성을 내포한다는 해석 공감합니다.
보편성과 참신성... 하하 이것참 얘기할게 너무 많군요.
현대에서 참신성은 보편성의 통합을 주로 얘기합니다. 참신성은 어디서 그냥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분야의 보편성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현대사회에서 의미있는 참신성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얘기하자면 너무 길어질듯... 하여간 말씀하신것 처럼 저도 디자인 할때 이 외줄타기에서 항상 고민하게 되는듯 합니다.
질문... 현대디자인의 전형적인 사례군요
전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디자인의 기능을 뻥튀겨 해석합니다. 그래서 단순한 유용성만이 아니라 감성적인 아름다움, 심미성도 기능안에 포함시킵니다. 또한 디자인의 기능에서 심미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티셔츠를 좋아했습니다." 라는 표현에서 사람들은 티셔츠의 무늬에서 심미적 만족감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티셔츠의 유용성에는 큰 불만이 없었고 약간의 불편은 어느정도 감수할 수 있다는 의미가 바탕에 깔렸겠지요. 그렇기에 티셔츠의 기능은 바뀌지 않은 것이 아닌 심미적측면에서 강화되었다고 봐야겠지요.
좀더 나가면 디자이너는 메세지 전달의 의도가 없었겠지만 사용자는 티셔츠 무늬를 자신만의 의미로 재해석하여 아마 자신만의 표현, 심미적 표출을 위해 티셔츠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심미성의 의미는 단순히 보편적인 미적 아름다움만이 아닌 개인과 사물의 특수한 관계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에 쓴 디자인의 정의에서 질서란 개념도 있지만 더 주목한 단어는 '의식적인 노력'입니다. 디자인을 직관적인 분야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저는 주변에 '의식적인 디자인'을 무척 강조합니다. 이건 이지원 선생께서 말하는 '디자인논리'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티셔츠 무늬도 메세지 의도는 없었겠지만 어떤 의식적인 행위를 했다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사용자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겠군요.
이제 그 무늬가 어떤 무늬냐... 티셔츠가 어떤 티셔츠냐 구체적으로 기술해 들어가면 '옳은 디자인이냐 그른 디자인이냐' 논란으로 확대되겠군요.
이거 재밌네요. ㅋ 많은 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보편성과 참신성... 하하 이것참 얘기할게 너무 많군요.
현대에서 참신성은 보편성의 통합을 주로 얘기합니다. 참신성은 어디서 그냥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분야의 보편성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현대사회에서 의미있는 참신성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얘기하자면 너무 길어질듯... 하여간 말씀하신것 처럼 저도 디자인 할때 이 외줄타기에서 항상 고민하게 되는듯 합니다.
질문... 현대디자인의 전형적인 사례군요
전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디자인의 기능을 뻥튀겨 해석합니다. 그래서 단순한 유용성만이 아니라 감성적인 아름다움, 심미성도 기능안에 포함시킵니다. 또한 디자인의 기능에서 심미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티셔츠를 좋아했습니다." 라는 표현에서 사람들은 티셔츠의 무늬에서 심미적 만족감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티셔츠의 유용성에는 큰 불만이 없었고 약간의 불편은 어느정도 감수할 수 있다는 의미가 바탕에 깔렸겠지요. 그렇기에 티셔츠의 기능은 바뀌지 않은 것이 아닌 심미적측면에서 강화되었다고 봐야겠지요.
좀더 나가면 디자이너는 메세지 전달의 의도가 없었겠지만 사용자는 티셔츠 무늬를 자신만의 의미로 재해석하여 아마 자신만의 표현, 심미적 표출을 위해 티셔츠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심미성의 의미는 단순히 보편적인 미적 아름다움만이 아닌 개인과 사물의 특수한 관계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에 쓴 디자인의 정의에서 질서란 개념도 있지만 더 주목한 단어는 '의식적인 노력'입니다. 디자인을 직관적인 분야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저는 주변에 '의식적인 디자인'을 무척 강조합니다. 이건 이지원 선생께서 말하는 '디자인논리'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티셔츠 무늬도 메세지 의도는 없었겠지만 어떤 의식적인 행위를 했다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사용자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겠군요.
이제 그 무늬가 어떤 무늬냐... 티셔츠가 어떤 티셔츠냐 구체적으로 기술해 들어가면 '옳은 디자인이냐 그른 디자인이냐' 논란으로 확대되겠군요.
이거 재밌네요. ㅋ 많은 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2008.11.27 16:08:13 (*.54.45.148)
일단 텍스트면에 넓어진 것을 환영하며,
제가 처음 감성적 센세이션을 이야기 한 것은 윤여경 아형께서 정의하신 디자인의 정의 중 "질서"라는 것에 집중해서 였습니다. 제가 해석하고 느끼기에 "질서"라 함은 참신성 보다는 보편성(굳이 나눈다면), 감성 보다는 이성(이것 역시), 그리고 그 이면에는 과학적이던 상식적이던 보편적이던 어떠한 로직이 존재하는 것 처럼 느껴졌지요. 디자인이라는 것은 발상의 이전(기저), 발상의 발전 내지는 확장, 행위 또는 결과 등 어느 층위에서간에 로직이 존재하겠구나 라고 와닿았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디자인에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 중 심미성에 대한 부분 중에서, 디자인이 만약 예술과 구별이 된다면(디자인과 예술의 간극을 유심히 살펴본다면) 상대적으로 합목적성으로 대표될 수 있는 디자인에게, 무목적적이며 객체와 주체가 일체가 되었을 때의 센세이션(지극히 감성적인)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의문에서 였습니다.
정리하면, 질서로 대표되는 디자인은 그 이면에 로직이 존재할 것이고 그것은 절대적 합목적성을 띄는 행위 이므로, 그러한 사유와 행위, 그리고 그 결과에 있어서 무목적적이고 절대적인 감성적 작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티셔츠 이야기는 디자인이지만 예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판단 역시 목적성과 컨택스트에 기인합니다.
제가 처음 감성적 센세이션을 이야기 한 것은 윤여경 아형께서 정의하신 디자인의 정의 중 "질서"라는 것에 집중해서 였습니다. 제가 해석하고 느끼기에 "질서"라 함은 참신성 보다는 보편성(굳이 나눈다면), 감성 보다는 이성(이것 역시), 그리고 그 이면에는 과학적이던 상식적이던 보편적이던 어떠한 로직이 존재하는 것 처럼 느껴졌지요. 디자인이라는 것은 발상의 이전(기저), 발상의 발전 내지는 확장, 행위 또는 결과 등 어느 층위에서간에 로직이 존재하겠구나 라고 와닿았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디자인에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 중 심미성에 대한 부분 중에서, 디자인이 만약 예술과 구별이 된다면(디자인과 예술의 간극을 유심히 살펴본다면) 상대적으로 합목적성으로 대표될 수 있는 디자인에게, 무목적적이며 객체와 주체가 일체가 되었을 때의 센세이션(지극히 감성적인)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의문에서 였습니다.
정리하면, 질서로 대표되는 디자인은 그 이면에 로직이 존재할 것이고 그것은 절대적 합목적성을 띄는 행위 이므로, 그러한 사유와 행위, 그리고 그 결과에 있어서 무목적적이고 절대적인 감성적 작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티셔츠 이야기는 디자인이지만 예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판단 역시 목적성과 컨택스트에 기인합니다.
2008.11.27 18:15:27 (*.176.97.99)
어떠한 희열일까?
처음에 돈오점수와 같이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 단계?
아니면 그 씨앗들을 키우고 또 재단하고 하면서 열매맺게 하는 단계?
그 맺은 열매에 만족스러워하는 다수를 보면 흡족해하는 단계?
어떤 단계의 희열일까?
처음에 돈오점수와 같이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 단계?
아니면 그 씨앗들을 키우고 또 재단하고 하면서 열매맺게 하는 단계?
그 맺은 열매에 만족스러워하는 다수를 보면 흡족해하는 단계?
어떤 단계의 희열일까?
2008.11.27 18:18:01 (*.176.97.99)
합목적성 기반에 질서를 만들어내는 이성적 로직 기반에 감성적이고 무목적적인, 절대적인, 그러한 희열은 어떤 것일까? 일단, 절대적 감성적 희열이 아니라 이성과 논리 베이스의 희열이 전자의 희열과 어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 아님 상관없이 같을까?
2008.11.27 18:36:49 (*.234.154.2)
희열은 어떤 감성적이냐 이성적이냐의 구분이 아닌 어떤 행위에 대한 물질적인 아닌 댓가지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뭐 이렇게 표현되지 않을까 싶네요.
인간에게 있어 질서부여는 어떤 목적성을 띄기 보다는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네요. 어지럽히는 행위도 어떤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보편적 질서는 아니지만... 뭐 개인적인 질서의 개념이 다들 다들테니까... 굳이 따지지는 맙시다. ㅋ
책상정리를 하고 느끼는 희열, 또 혼란스런 마음이 정리되는 희열,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희열, 이런 희열들이 인생에서 질서가 부여되면서 느껴지는 희열이겠지요.
전 디자인을 하면서 일종이 비슷한 희열을 느낍니다.
훌륭한 디자인을 봤을때 자신이 자책스러 느끼는 짜증도 머리속의 질서가 깨지고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면서 느껴지는 일종의 희열이라고 말할수 있겠지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뭐 이렇게 표현되지 않을까 싶네요.
인간에게 있어 질서부여는 어떤 목적성을 띄기 보다는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네요. 어지럽히는 행위도 어떤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보편적 질서는 아니지만... 뭐 개인적인 질서의 개념이 다들 다들테니까... 굳이 따지지는 맙시다. ㅋ
책상정리를 하고 느끼는 희열, 또 혼란스런 마음이 정리되는 희열,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희열, 이런 희열들이 인생에서 질서가 부여되면서 느껴지는 희열이겠지요.
전 디자인을 하면서 일종이 비슷한 희열을 느낍니다.
훌륭한 디자인을 봤을때 자신이 자책스러 느끼는 짜증도 머리속의 질서가 깨지고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면서 느껴지는 일종의 희열이라고 말할수 있겠지요?
2008.11.27 18:56:17 (*.176.97.99)
주제가 감성적 센세이션이란 모호하고 어려운 외래어에서 희열로 좁혀져 좀 쉬워졌네요. 그 두가지가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서 디자인의 과정이나 결과를 통해 희열을 느낄 수는 있지만, 반대로 모든 희열을 느끼는 과정이나 행위가 디자인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겠지요. 디자인과 희열은 그런 면에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거겠죠. 제가 희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디자인과 예술의 간극에 존재하는 여러 가치와 요소 중에 갑작스레 희열을 뽑아 공론화 시킨 것이고, 그것은 희열에 대한 고민을 통해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 다름을 알게되고 그럼으로 디자인 본연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입니다. 하지만 예술역시 희열과 필요충분조건은 아닙니다만 예술이냐 비예술이냐를 정의하는 여러 조건 중 창작자, 수용자 관점의 예술에는 반드시 존재하는 지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각에 대해서 좀 설명하자면 논리적으로 외부로 부터 어떠한 자극이 우리 감각기관을 자극하여 그것이 전기신호로 바뀌고 뇌로 흘러 어떠한 연상작용이나 신체적 리액션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항상 자극과 함께 있는 거지요. 어느 순간 일어나는 해프닝 같은 자극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작은 변화의 기온, 습도 등의 자극 부터 고요와 암흑이 주는 자극까지 자극과 감각기관은 항상 맞닿아있다는 거지요. 그로 인해 우리 자극은 디자인 혹은 예술적 체험을 통한 자극에 다소 무뎌지거나 상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앞서 얘기했듯이 어떠한 사회적 목적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디자인의 경우 그 상투성이 자칫 일상적 자극에 무뎌진 감각기관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생기는 거지요, 물론 예술과의 상대성에서 말입니다. 그 전제에는 디자인 보다 상대적으로 무목적적인 예술적 활동이 그러한 상투적인 것을 뒤집는, 아니 상투성에 무뎌진 감각기관을 일깨우는 충격적인 지각을 일으키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희열이라고, 그리고 감성적 센세이션이라 불렀습니다. 물론 이것은 전제일 뿐입니다. 목적성을 지니고 있던 아니던 그 자극의 정도가 같을 수도 있고 전제했던 것 처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같다면 다른 이슈를 찾아볼 수 있고, 다름을 캐취할 수 있다면 디자인과 예술의 다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겠지요
지각에 대해서 좀 설명하자면 논리적으로 외부로 부터 어떠한 자극이 우리 감각기관을 자극하여 그것이 전기신호로 바뀌고 뇌로 흘러 어떠한 연상작용이나 신체적 리액션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항상 자극과 함께 있는 거지요. 어느 순간 일어나는 해프닝 같은 자극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작은 변화의 기온, 습도 등의 자극 부터 고요와 암흑이 주는 자극까지 자극과 감각기관은 항상 맞닿아있다는 거지요. 그로 인해 우리 자극은 디자인 혹은 예술적 체험을 통한 자극에 다소 무뎌지거나 상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앞서 얘기했듯이 어떠한 사회적 목적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디자인의 경우 그 상투성이 자칫 일상적 자극에 무뎌진 감각기관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생기는 거지요, 물론 예술과의 상대성에서 말입니다. 그 전제에는 디자인 보다 상대적으로 무목적적인 예술적 활동이 그러한 상투적인 것을 뒤집는, 아니 상투성에 무뎌진 감각기관을 일깨우는 충격적인 지각을 일으키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희열이라고, 그리고 감성적 센세이션이라 불렀습니다. 물론 이것은 전제일 뿐입니다. 목적성을 지니고 있던 아니던 그 자극의 정도가 같을 수도 있고 전제했던 것 처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같다면 다른 이슈를 찾아볼 수 있고, 다름을 캐취할 수 있다면 디자인과 예술의 다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겠지요
2008.11.27 20:12:11 (*.124.208.82)
용어들이 쉬워지니 좀 낫군요 ㅋ
디자인이란 존재를 예술과의 차이점을 통해 찾는 입장, 일전에 이지원 선생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것 같은데...
저도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점을 주제로 던지고 그 둘사이를 저울질 하며 디자인의 존재를 다시금 점검해 보려는 노력을 하곤 합니다.
글을 주고받으며 '감성적 센세이션'에 대해 의도하시는 바를 알것 같습니다. 예술이 자극에 무뎌진 일상생활속에서 감성적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네요. 사실 디자인도 충분히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고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더 많은 사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최근 디자이너들이 예술가 처럼 행동하거나 저급 예술품을 디자인으로 포장하는 사례가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서 어쩌면 이런 의견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이건 현재 우리나라가 산업발전을 쫌 하였다고 우리사회에서 디자인을 짚어보지도 않은채 디자인! 디자인!을 외친 왜곡된 현상이 아닐까 봅니다. 또 한가지 이건 전적으로 제생각인데... 디자이너는 많아지고 일할곳은 적다보니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살길을 위해 개인적인 디자인을 추구하게 되고 이런 현상이 확대되고 지속되다 보니 디자인과 예술과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사회적 현상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디자이너가 예술을 지향하면서 디자인 자체를 왜곡하는 행위는 우리나라만이 아닌 20세기 초중반에 급격히 산업화가 되면서 기계와 추상화에 미쳤던 미국사회에서도 겪었던 비슷한 현상입니다.
논점이 디자인과 예술과의 차이를 고민하는 것으로 옮겨졌습니다.
디자인과 예술과의 차이의 관점에서 디자인을 다시 정의해야 할듯 싶군요. 정시화 선생님의 디자인과 예술의 정의를 인용합니다.
예술은 아버지(인간관계)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행위이고
디자인은 환경(물질, 사물, 시스템)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행위이다.
디자인이란 존재를 예술과의 차이점을 통해 찾는 입장, 일전에 이지원 선생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것 같은데...
저도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점을 주제로 던지고 그 둘사이를 저울질 하며 디자인의 존재를 다시금 점검해 보려는 노력을 하곤 합니다.
글을 주고받으며 '감성적 센세이션'에 대해 의도하시는 바를 알것 같습니다. 예술이 자극에 무뎌진 일상생활속에서 감성적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네요. 사실 디자인도 충분히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고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더 많은 사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최근 디자이너들이 예술가 처럼 행동하거나 저급 예술품을 디자인으로 포장하는 사례가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서 어쩌면 이런 의견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이건 현재 우리나라가 산업발전을 쫌 하였다고 우리사회에서 디자인을 짚어보지도 않은채 디자인! 디자인!을 외친 왜곡된 현상이 아닐까 봅니다. 또 한가지 이건 전적으로 제생각인데... 디자이너는 많아지고 일할곳은 적다보니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살길을 위해 개인적인 디자인을 추구하게 되고 이런 현상이 확대되고 지속되다 보니 디자인과 예술과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사회적 현상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디자이너가 예술을 지향하면서 디자인 자체를 왜곡하는 행위는 우리나라만이 아닌 20세기 초중반에 급격히 산업화가 되면서 기계와 추상화에 미쳤던 미국사회에서도 겪었던 비슷한 현상입니다.
논점이 디자인과 예술과의 차이를 고민하는 것으로 옮겨졌습니다.
디자인과 예술과의 차이의 관점에서 디자인을 다시 정의해야 할듯 싶군요. 정시화 선생님의 디자인과 예술의 정의를 인용합니다.
예술은 아버지(인간관계)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행위이고
디자인은 환경(물질, 사물, 시스템)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행위이다.
2008.11.28 00:03:37 (*.176.97.99)
자기 전에 혹시나 왔는데 역시나네요 후훗
여경 아형의 마지막 글을 읽고 여러생각들이 머리 속을 부유하는데, 디테일한 것들은 차치하고 몇가지 키워드나 이슈만 던져봅니다.
첫번째, 여전히 희열에 대한 부분인데요, 앞서 저도 언급한 바와 같이 물론 디자인 과정, 결과에서도 희열이 존재하겠죠. 그런데 예술에 비한다면 (물론 제 주위에 의식있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서) 디자이너들의 희열이지 대상이 되는 수용자의 희열은 예술 수용자가 느끼는 희열에 비하면 조금 덜 한 듯 합니다. 디자인 수용자들이 느끼는 감정이 만족에 가깝다면(재화던 서비스던 공급과 수요에 대한 목적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예술 수용자들은 감성적 센세이션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일례로 물론 눈물을 흘릴 정도의 감정이 비논리적 측정기준이 될 수 있지만, 예술적 감흥은 정서적 카타르시스, 물리적 눈물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것이 예술과 디자인이 대상 수용자에게 줄 수 있는 정서적 체험의 정도가 태생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 연유가 유목적적인 디자인의 행위가 소위 순수한 예술적 행위와 그 출발점이 달라서 그런 것인지, 앞선 계속 논의의 연속선 상에서 디자인과 예술의 다름을 수용자 관점의 다름에서 부터 찾아보자는 의도였습니다. 물론 정시화 선생님의 정의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여경 아형의 마지막 글을 읽고 여러생각들이 머리 속을 부유하는데, 디테일한 것들은 차치하고 몇가지 키워드나 이슈만 던져봅니다.
첫번째, 여전히 희열에 대한 부분인데요, 앞서 저도 언급한 바와 같이 물론 디자인 과정, 결과에서도 희열이 존재하겠죠. 그런데 예술에 비한다면 (물론 제 주위에 의식있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서) 디자이너들의 희열이지 대상이 되는 수용자의 희열은 예술 수용자가 느끼는 희열에 비하면 조금 덜 한 듯 합니다. 디자인 수용자들이 느끼는 감정이 만족에 가깝다면(재화던 서비스던 공급과 수요에 대한 목적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예술 수용자들은 감성적 센세이션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일례로 물론 눈물을 흘릴 정도의 감정이 비논리적 측정기준이 될 수 있지만, 예술적 감흥은 정서적 카타르시스, 물리적 눈물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것이 예술과 디자인이 대상 수용자에게 줄 수 있는 정서적 체험의 정도가 태생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 연유가 유목적적인 디자인의 행위가 소위 순수한 예술적 행위와 그 출발점이 달라서 그런 것인지, 앞선 계속 논의의 연속선 상에서 디자인과 예술의 다름을 수용자 관점의 다름에서 부터 찾아보자는 의도였습니다. 물론 정시화 선생님의 정의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2008.11.28 00:52:32 (*.160.230.62)
주제가 정리된 것 같은데...
한 이틀 빼먹은 관계로 다시 넓히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황용모씨의 말씀하신 디자인에 있어 질서, 로직, 디자인의 합목적성 그리고, 감성적인 센세이션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설명해주신대로 디자인과 예술을 구분하고자 할때 가장 큰 기준이 되는 것은 어떤 목적성이겠습니다. 제가 같은 내용을 좀 더 풀어서 말해보겠습니다. 디자인과 예술 모두 다 '표현'을 전제로 한 것이죠. 하지만, 예술은 표현이 곧 목표이고, 디자인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황선생님께서 예술의 무목적성, 객체와 주체의 일체에 대한 말씀을 제 방식대로 해석해본 것입니다. 이성, 즉 로직. 디자인에 있어서의 로직은 바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표현을 사용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저것이 필요하고, 저것을 가져오기 위해서 그것을 해야한다' 이렇게 생각이 전개되죠.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저는 디자인이라는 행위에 무목적적이고 절대적인 감성적 작용이 강하게 개입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디자인이라는 행위가 표현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술과 강하게 연관되는 부분입니다. 디자인을 계획하는 단계는 확실히 논리적이지만 그 계획을 바탕으로 표현을 할때에는 감성적이고 비논리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까지는 말할 수 있어도 왜 그걸 좋아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죠. 이것은 장인정신(craftmenship)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같은 종류의 표현법일지라도 어떤 것이 다른것보다 좋아보일 수 있습니다. '베스커빌을 사용하겠다'까지는 논리적일 수 있지만, 디자인은 그 논리적인 결정에서 끝나지 않고 '베스커빌을 어떻게 하면 가장 매력적으로 쓸 수 있을까'까지 해결해내야 합니다. 디자인을 문제해결을 위한 이성적 프로세스만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고 봅니다. 객관적인 수치와 논리적인 생각만으로 하는 디자인은 알멩이 없는 호두와 뭐가 다릅니까? 자칫 잘못하면 밝혀진 규칙만을 따라서 타성에 젖은 일반적인 결과만을 내는 것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그런게 아닙니다.
무목적적인 예술이 타성을 깨고 새로움 일깨울 수 있다는 말씀은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디자인은 상투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우려 역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디자인 방법으로 돌려야 할 문제이지, 디자인이라는 장르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 이틀 빼먹은 관계로 다시 넓히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황용모씨의 말씀하신 디자인에 있어 질서, 로직, 디자인의 합목적성 그리고, 감성적인 센세이션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설명해주신대로 디자인과 예술을 구분하고자 할때 가장 큰 기준이 되는 것은 어떤 목적성이겠습니다. 제가 같은 내용을 좀 더 풀어서 말해보겠습니다. 디자인과 예술 모두 다 '표현'을 전제로 한 것이죠. 하지만, 예술은 표현이 곧 목표이고, 디자인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황선생님께서 예술의 무목적성, 객체와 주체의 일체에 대한 말씀을 제 방식대로 해석해본 것입니다. 이성, 즉 로직. 디자인에 있어서의 로직은 바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표현을 사용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저것이 필요하고, 저것을 가져오기 위해서 그것을 해야한다' 이렇게 생각이 전개되죠.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저는 디자인이라는 행위에 무목적적이고 절대적인 감성적 작용이 강하게 개입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디자인이라는 행위가 표현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술과 강하게 연관되는 부분입니다. 디자인을 계획하는 단계는 확실히 논리적이지만 그 계획을 바탕으로 표현을 할때에는 감성적이고 비논리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까지는 말할 수 있어도 왜 그걸 좋아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죠. 이것은 장인정신(craftmenship)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같은 종류의 표현법일지라도 어떤 것이 다른것보다 좋아보일 수 있습니다. '베스커빌을 사용하겠다'까지는 논리적일 수 있지만, 디자인은 그 논리적인 결정에서 끝나지 않고 '베스커빌을 어떻게 하면 가장 매력적으로 쓸 수 있을까'까지 해결해내야 합니다. 디자인을 문제해결을 위한 이성적 프로세스만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고 봅니다. 객관적인 수치와 논리적인 생각만으로 하는 디자인은 알멩이 없는 호두와 뭐가 다릅니까? 자칫 잘못하면 밝혀진 규칙만을 따라서 타성에 젖은 일반적인 결과만을 내는 것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그런게 아닙니다.
무목적적인 예술이 타성을 깨고 새로움 일깨울 수 있다는 말씀은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디자인은 상투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우려 역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디자인 방법으로 돌려야 할 문제이지, 디자인이라는 장르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2008.11.28 09:23:52 (*.160.230.62)
제가 꾸역구역 글을 쓰는 사이 황선생님께서 생각을 올려주셨네요. 수용자 입장에서 보는 관점도 흥미롭습니다. 요즘 시대의 디자인 수용자와 예술 수용자가 느끼는 만족과 그들의 체험이 다를 수 있다는데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 다름이 태생적인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하는데 회의적입니다. 디자인에서 느끼는 희열이 예술과 다르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만드는 이, 보는 이 모두다 디자인을 너무 제한해서 생각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이 '디자인'이란 말을 통해 떠올리는 어떤 개념은 디자인 자체라기 보다는, 사실 산업 사회에서 생산활동과 결부된, 디자인의 어떤 한 측면이 아닐까요.
윤여경 선생님이 말씀하신 우려, 즉, 감성적 측면만 지나치게 강조되는 디자인에 대한 우려는 분명히 인식해야 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디자인의 이성적 프로세스만을 부각시켜 예술과 비교하는 것은 또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 목적을 이루는 이성적 프로세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표현에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정도와 경로의 차이는 있을망정, 디자인에도 보는 즐거움, 유희, 카타르시스가 분명히 있습니다.
윤여경 선생님이 말씀하신 우려, 즉, 감성적 측면만 지나치게 강조되는 디자인에 대한 우려는 분명히 인식해야 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디자인의 이성적 프로세스만을 부각시켜 예술과 비교하는 것은 또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 목적을 이루는 이성적 프로세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표현에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정도와 경로의 차이는 있을망정, 디자인에도 보는 즐거움, 유희, 카타르시스가 분명히 있습니다.
2008.11.28 14:31:53 (*.234.154.2)
디자인과 예술의 논의가 시작되었군요. 뭔가 얘기가 진지해져 재밌습니다. ^^
황용모 선생이 제시한 수용자 관점에서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 이것은 디자인과 예술이 각기 지향하는 목적과도 연결되었구요. 이지원 선생께서 또 이것을 디자인과 예술의 표현을 통해 디자인의 위치를 가늠해 주셨군요.
사실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를 수용자관점에서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도 문제네요. ^^ 항상 생산자 관점에서만 고민해온 점, 반성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왠지 수용자관점을 일반화시키기에는 좀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너무 개별적이라... 혹시 이런 것의 연구결과가 있나요?
누구나 생각은 있고 그것을 표현하려 듭니다. 그 과정에서 이성과 감성이 거의 같이 작용하게 됩니다. 그러니 딱히 이성과 감성을 잘라서 이부분은 이성적이고 이부분은 감성적이라고 말하기도 힙듭니다. 저는 그저 어떤 디자인물을 보았을때 도저히 납득할만한 이성적(논리적)부분을 찾을 수 없는 디자인, 혹은 디자이너에게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의 주관이 너무 강해 동의 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디자인, 이런 디자인을 비판하는 것이죠. 앞의 티셔츠사례의 대답으로 말했듯이 전 심미성도 디자인 기능의 한 측면으로 보기 때문에 "예쁘게 만들고 싶었다"라는 논리도 인정해 줍니다.(그것이 솔직하고, 내눈에도 이뻐 보인다는 전제하에서) 예술도 저는 같은 시각으로 봅니다. 제가 작품을 볼 때나 이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납득이 가면 감탄사를 유발하고 눈물까지 글썽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으면 제게는 아무리 비싼 예술도 쓰레기일 따름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단지 ‘누가 좋다니까 좋은가 보다...’ 이런 논리만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경멸하는 편입니다. 수용자 관점에서 이런 사람들 꽤나 많습니다. 느끼지도 못하면서 필요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가지려드는 사람들 너무나 많이 목격합니다.
j전 예술도 어떤 목적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표현을 통해 표출하려 든다는 점에서 예술도 분명 어떤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에스키모인(이누잇족)들은 예술을 감정조절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기후여건상 그들의 예술은 거의 조그만한 조각품으로 표현되는데 그 조각품의 표정들이 대부분 고통스런 표정입니다. 그들은 그 조각품을 놓고 감상하거나 팔거나 하지 않고 어떤 특정지역에 가져가 바다에 던져버림으로서 예술을 완성합니다. 자신의 나쁜 감정을 버리는 행위죠.
예술과 디자인 문화에 따라 너무나 특수한 측면이 강합니다. 우리가 어떤 디자인과 예술을 말할 때 자신이 처한 개별적인 상황과 주관적인 해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들을 항상 염두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황용모 선생이 제시한 수용자 관점에서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 이것은 디자인과 예술이 각기 지향하는 목적과도 연결되었구요. 이지원 선생께서 또 이것을 디자인과 예술의 표현을 통해 디자인의 위치를 가늠해 주셨군요.
사실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를 수용자관점에서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도 문제네요. ^^ 항상 생산자 관점에서만 고민해온 점, 반성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왠지 수용자관점을 일반화시키기에는 좀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너무 개별적이라... 혹시 이런 것의 연구결과가 있나요?
누구나 생각은 있고 그것을 표현하려 듭니다. 그 과정에서 이성과 감성이 거의 같이 작용하게 됩니다. 그러니 딱히 이성과 감성을 잘라서 이부분은 이성적이고 이부분은 감성적이라고 말하기도 힙듭니다. 저는 그저 어떤 디자인물을 보았을때 도저히 납득할만한 이성적(논리적)부분을 찾을 수 없는 디자인, 혹은 디자이너에게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의 주관이 너무 강해 동의 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디자인, 이런 디자인을 비판하는 것이죠. 앞의 티셔츠사례의 대답으로 말했듯이 전 심미성도 디자인 기능의 한 측면으로 보기 때문에 "예쁘게 만들고 싶었다"라는 논리도 인정해 줍니다.(그것이 솔직하고, 내눈에도 이뻐 보인다는 전제하에서) 예술도 저는 같은 시각으로 봅니다. 제가 작품을 볼 때나 이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납득이 가면 감탄사를 유발하고 눈물까지 글썽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으면 제게는 아무리 비싼 예술도 쓰레기일 따름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단지 ‘누가 좋다니까 좋은가 보다...’ 이런 논리만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경멸하는 편입니다. 수용자 관점에서 이런 사람들 꽤나 많습니다. 느끼지도 못하면서 필요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가지려드는 사람들 너무나 많이 목격합니다.
j전 예술도 어떤 목적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표현을 통해 표출하려 든다는 점에서 예술도 분명 어떤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에스키모인(이누잇족)들은 예술을 감정조절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기후여건상 그들의 예술은 거의 조그만한 조각품으로 표현되는데 그 조각품의 표정들이 대부분 고통스런 표정입니다. 그들은 그 조각품을 놓고 감상하거나 팔거나 하지 않고 어떤 특정지역에 가져가 바다에 던져버림으로서 예술을 완성합니다. 자신의 나쁜 감정을 버리는 행위죠.
예술과 디자인 문화에 따라 너무나 특수한 측면이 강합니다. 우리가 어떤 디자인과 예술을 말할 때 자신이 처한 개별적인 상황과 주관적인 해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들을 항상 염두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2008.11.30 01:46:10 (*.82.56.7)
이런 대화. 즐겁습니다.
윤선생님과 황선생님 이야기를 읽으니 평소 제가 생각치도 못했던 것들이 있음을 알게되고 새삼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군요. 하지만, 모자라다고 입을 닫고 있으면 어디로도 갈 수 없기 때문에, 부족한 말이나마 계속 써보겠습니다. 보충과 지적 부탁드립니다.
윤여경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에스키모의 조각품. 참으로 재밌는 일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문득 연날리기가 생각납니다. 실용적 목적을 가진 예술이라... '실용적'이란 말의 범위도 애매하네요. 조각품을 만드는 에스키모들은 그것이 예술이냐 디자인이냐와 같은 질문은 애당초 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장르의 구분은 관념적인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디자인과 예술이 휴전선처럼 똑 떨어지게 구분되지 않는게 당연하겠지만, 우리가 씨름하고 있는 질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기 위해서 당분간 이 넓게 퍼진 개념의 스펙트럼의 양쪽 끝만을 보고 얘기를 하는 것이겠지요. 참으로 우매하게 생각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전문가로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나치게 관념에 빠져서 편협해지지 않게 주의하겠습니다.
수용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예술과 디자인에서 오는 희열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양쪽 다 결국에는 '표현'으로 귀결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표현으로 발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유'입니다. 저는 이 점에서 예술과 디자인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둘의 차이점은 그 표현에 도달하는 과정입니다. 어떤 서로 다른 이유와 사고과정을 거쳐서 표현의 단계에 이르면, 예술과 디자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전에 쇼핑몰에 갔는데 헬로키티 가방이 눈에 띄더군요. 솔직히 사고 싶었습니다만... 제가 쓰기엔 무리라서 사지 않았습니다. 헬로키티 가방은 디자인이죠. 키티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캐릭터 디자인이고요. 저는 지금 감히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 디자인과 갤러리의 고전 명화들을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이 두 종류는 태생이 다릅니다. 세상에 나타나게 된 동기가 다르고 보여지는 방식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수용자가 이 서로 다른 두가지 표현에서 얻는 희열의 종류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만화를 보면 여자아이가 '귀여워'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과장된 장면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혀 근거없는 과장일까요? 헬로키티를 좋아해서 돈을 지불하고 가방을 사는 것과, 몬드리안의 컴포지션을 좋아해서 입장료를 내고 갤러리를 찾는 일은 둘 다 모두 인간의 어떤 공통된 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앤디 워홀이 하위문화를 상위문화의 무대로 끌어올렸던 시도 역시 바로 이런 생각과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컴포지션이 그려진 가방과 헬로키티 그림이 걸려있는 갤러리...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정시화 선생님의 정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갈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해서 디자인과 예술을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디자인을 상품과 서비스를 팔거나 편리한 도구를 만드는 과정으로 국한짓는 것이 아닐까요. 티셔츠에 무늬를 넣거나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어떤 갈등 요소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인간관계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에서 디자인이 제외한 부분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현대의 새로운 미디어 패러다임은 제쳐두고라도, 전통적으로 그래픽 디자인이 다루는 분야는 필자(author)와 독자(reader)를 연결시켜주는 미디어인데요. 이것이 왜 인간관계로 설명되지 않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타이포그래피는 어떤 인간의 생각을 여러 다른 인간에게 전달하는 기호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분야가 아닙니까. 아니면 제가 정시화 선생님의 정의를 심각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요?
윤선생님과 황선생님 이야기를 읽으니 평소 제가 생각치도 못했던 것들이 있음을 알게되고 새삼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군요. 하지만, 모자라다고 입을 닫고 있으면 어디로도 갈 수 없기 때문에, 부족한 말이나마 계속 써보겠습니다. 보충과 지적 부탁드립니다.
윤여경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에스키모의 조각품. 참으로 재밌는 일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문득 연날리기가 생각납니다. 실용적 목적을 가진 예술이라... '실용적'이란 말의 범위도 애매하네요. 조각품을 만드는 에스키모들은 그것이 예술이냐 디자인이냐와 같은 질문은 애당초 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장르의 구분은 관념적인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디자인과 예술이 휴전선처럼 똑 떨어지게 구분되지 않는게 당연하겠지만, 우리가 씨름하고 있는 질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기 위해서 당분간 이 넓게 퍼진 개념의 스펙트럼의 양쪽 끝만을 보고 얘기를 하는 것이겠지요. 참으로 우매하게 생각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전문가로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나치게 관념에 빠져서 편협해지지 않게 주의하겠습니다.
수용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예술과 디자인에서 오는 희열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양쪽 다 결국에는 '표현'으로 귀결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표현으로 발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유'입니다. 저는 이 점에서 예술과 디자인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둘의 차이점은 그 표현에 도달하는 과정입니다. 어떤 서로 다른 이유와 사고과정을 거쳐서 표현의 단계에 이르면, 예술과 디자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전에 쇼핑몰에 갔는데 헬로키티 가방이 눈에 띄더군요. 솔직히 사고 싶었습니다만... 제가 쓰기엔 무리라서 사지 않았습니다. 헬로키티 가방은 디자인이죠. 키티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캐릭터 디자인이고요. 저는 지금 감히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 디자인과 갤러리의 고전 명화들을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이 두 종류는 태생이 다릅니다. 세상에 나타나게 된 동기가 다르고 보여지는 방식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수용자가 이 서로 다른 두가지 표현에서 얻는 희열의 종류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만화를 보면 여자아이가 '귀여워'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과장된 장면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혀 근거없는 과장일까요? 헬로키티를 좋아해서 돈을 지불하고 가방을 사는 것과, 몬드리안의 컴포지션을 좋아해서 입장료를 내고 갤러리를 찾는 일은 둘 다 모두 인간의 어떤 공통된 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앤디 워홀이 하위문화를 상위문화의 무대로 끌어올렸던 시도 역시 바로 이런 생각과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컴포지션이 그려진 가방과 헬로키티 그림이 걸려있는 갤러리...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정시화 선생님의 정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갈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해서 디자인과 예술을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디자인을 상품과 서비스를 팔거나 편리한 도구를 만드는 과정으로 국한짓는 것이 아닐까요. 티셔츠에 무늬를 넣거나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어떤 갈등 요소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인간관계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에서 디자인이 제외한 부분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현대의 새로운 미디어 패러다임은 제쳐두고라도, 전통적으로 그래픽 디자인이 다루는 분야는 필자(author)와 독자(reader)를 연결시켜주는 미디어인데요. 이것이 왜 인간관계로 설명되지 않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타이포그래피는 어떤 인간의 생각을 여러 다른 인간에게 전달하는 기호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분야가 아닙니까. 아니면 제가 정시화 선생님의 정의를 심각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요?
2008.11.30 11:35:11 (*.234.154.2)
최근에 저도 참 많이 배웁니다. 더 많은 분들이 대화에 참여해 의견을 피력해주면 좋겠군요.
저도 관계라는 차원에서는 정시화 선생님의 정의가 선뜩 납득되지는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에서 디자인을 배재하는 부분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사회시스템 속에서 디자인이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사회관계’가 배재된 것에도 적지 않은 불만이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기분은 듭니다. 디자인과 예술을 나누는 출발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자주 인용하게 됩니다.
'갈등'이라는 단어, 전 무척 매력적입니다. '갈등'은 대화와 타협을 유발하고 '해결'에 이르게 해주는 근본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합니다. 헬로키티의 탄생도 뭔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내적갈등에서, 또 시장에서 물건을 좀더 세련되게 팔기 위한 물적갈등에서 나온 산물이 아닐까요? 몬드리안의 컴포지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렇다면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가 어떤 갈등의 차이냐?”라고 진단해 보는 접근이 전 아주 새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정시화 선생님은 인간/사물 이렇게 갈등의 대상으로서 정리하신 거겠죠. 어쨌든 좀더 분명하게 디자인 영역의 선을 그어주는 계기는 되었습니다. ^^
사실 디자인을 제대로 고민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해 디자이너들이 정말 엄한데서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요.
저도 예술과 디자인의 표현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최근에는 예술과 디자인의 표현이 서로 넘나들어 마음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경계선마져 사라졌습니다. 수용자가 느끼는 희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를 표현이나 제작과정, 유통과정 등으로 규정짓기에도 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사용자 관점에서도 예술과 디자인을 나누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예쁜게 디자인 된 가방을 사서 예술품처럼 모셔놓는 경우도 많거든요. 혹은 단지 맘에 든다는 이유도 필요 없는 예쁜 디자인 물건을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점들이 디자인을 애매하게 만들었고 우리가 디자인을 재규정하는 시도를 하게 만드는 이유 같습니다.(물론 디자인을 더 잘하기 위해서겠죠)
제가 디자인 정의를 쓸때 몇몇 단어를 나중에 추가했습니다. "의미있는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직관적인 노력" 이것은 예술적인 영역도 충분히 포함하고 있기에 디자인의 정의로 어울리지 않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유용하고"란 단어와 "의식적인" "결과"란 단어를 추가해서 디자인과 예술의 영역을 구분했습니다.
"유용한 = 기능이 있는"
"의식적인 = 논리"
"결과 = 시장성"
꼭 이렇다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연결시켜도 되겠군요. ^^
디자인과 예술의 정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창의적인 이 두 분야에 명쾌한 정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도 관계라는 차원에서는 정시화 선생님의 정의가 선뜩 납득되지는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에서 디자인을 배재하는 부분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사회시스템 속에서 디자인이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사회관계’가 배재된 것에도 적지 않은 불만이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기분은 듭니다. 디자인과 예술을 나누는 출발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자주 인용하게 됩니다.
'갈등'이라는 단어, 전 무척 매력적입니다. '갈등'은 대화와 타협을 유발하고 '해결'에 이르게 해주는 근본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합니다. 헬로키티의 탄생도 뭔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내적갈등에서, 또 시장에서 물건을 좀더 세련되게 팔기 위한 물적갈등에서 나온 산물이 아닐까요? 몬드리안의 컴포지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렇다면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가 어떤 갈등의 차이냐?”라고 진단해 보는 접근이 전 아주 새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정시화 선생님은 인간/사물 이렇게 갈등의 대상으로서 정리하신 거겠죠. 어쨌든 좀더 분명하게 디자인 영역의 선을 그어주는 계기는 되었습니다. ^^
사실 디자인을 제대로 고민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해 디자이너들이 정말 엄한데서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요.
저도 예술과 디자인의 표현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최근에는 예술과 디자인의 표현이 서로 넘나들어 마음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경계선마져 사라졌습니다. 수용자가 느끼는 희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를 표현이나 제작과정, 유통과정 등으로 규정짓기에도 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사용자 관점에서도 예술과 디자인을 나누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예쁜게 디자인 된 가방을 사서 예술품처럼 모셔놓는 경우도 많거든요. 혹은 단지 맘에 든다는 이유도 필요 없는 예쁜 디자인 물건을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점들이 디자인을 애매하게 만들었고 우리가 디자인을 재규정하는 시도를 하게 만드는 이유 같습니다.(물론 디자인을 더 잘하기 위해서겠죠)
제가 디자인 정의를 쓸때 몇몇 단어를 나중에 추가했습니다. "의미있는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직관적인 노력" 이것은 예술적인 영역도 충분히 포함하고 있기에 디자인의 정의로 어울리지 않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유용하고"란 단어와 "의식적인" "결과"란 단어를 추가해서 디자인과 예술의 영역을 구분했습니다.
"유용한 = 기능이 있는"
"의식적인 = 논리"
"결과 = 시장성"
꼭 이렇다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연결시켜도 되겠군요. ^^
디자인과 예술의 정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창의적인 이 두 분야에 명쾌한 정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2008.11.30 19:09:40 (*.176.97.99)
오랫만에 들어오니 글이 많아 좋습니다.
쭉 읽어봤습니다만, 넉넉히 생각하고 글을 쓸만한 여유가 당장 없어 잠깐이나마 느낀 단상을 적겠습니다.
표현에 있어서 예술과 디자인이 어느정도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수용자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표현의 정도와 수준, 내용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는 것이고 수용자가 느끼는 예술적 감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 로직을 베이스로 하고 있지만 실제 표현에 있어서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개입 된다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은 매우 이성적이고 이론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로직에서 벗어나 궁극의 표현행위를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겠습니다만, 실제로 이성적 사고의 범주 안에서 혹은 부풀어 오르는 감성작용을 간간히 이성적 족쇄가 낚아 끌어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팝아트의 예도 잠깐 드셨는데, 팝아트의 사조가 다소 디자인의 영역과 겹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표현일 뿐이지, 팝아트라는 사조의 맥락, 그러한 운동과 사유, 표현이 태동하게된 컨텍스트 내에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술 자체로만 본다면 문학, 퍼포먼스,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장르에서 일관적으로 보여지고 있는 컨템포러리 사조는 기존의 예술과도 크게 갈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는 기존 전체 예술을 통괄하거나 하는 것 보다 최근, 컨템포러리의 사유와 표현에 대해(디자인도 마찬가지) 이야기 해보고 그걸로 풀리지 않는 것은 역사적으로 풀릴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 생각의 개진은 관념이나 개념적인 것들 말고 사례를 중심으로 하는 생각이나 예술과 디자인의 태생적, 사적 배경에 대해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당장 글을 쓰지 않으면 나중에 쓰기 어려울 것 같아 없는 시간에 급하게 쓰다보니 앞뒤가 안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조만간에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쭉 읽어봤습니다만, 넉넉히 생각하고 글을 쓸만한 여유가 당장 없어 잠깐이나마 느낀 단상을 적겠습니다.
표현에 있어서 예술과 디자인이 어느정도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수용자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표현의 정도와 수준, 내용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는 것이고 수용자가 느끼는 예술적 감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 로직을 베이스로 하고 있지만 실제 표현에 있어서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개입 된다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은 매우 이성적이고 이론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로직에서 벗어나 궁극의 표현행위를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겠습니다만, 실제로 이성적 사고의 범주 안에서 혹은 부풀어 오르는 감성작용을 간간히 이성적 족쇄가 낚아 끌어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팝아트의 예도 잠깐 드셨는데, 팝아트의 사조가 다소 디자인의 영역과 겹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표현일 뿐이지, 팝아트라는 사조의 맥락, 그러한 운동과 사유, 표현이 태동하게된 컨텍스트 내에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술 자체로만 본다면 문학, 퍼포먼스,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장르에서 일관적으로 보여지고 있는 컨템포러리 사조는 기존의 예술과도 크게 갈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는 기존 전체 예술을 통괄하거나 하는 것 보다 최근, 컨템포러리의 사유와 표현에 대해(디자인도 마찬가지) 이야기 해보고 그걸로 풀리지 않는 것은 역사적으로 풀릴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 생각의 개진은 관념이나 개념적인 것들 말고 사례를 중심으로 하는 생각이나 예술과 디자인의 태생적, 사적 배경에 대해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당장 글을 쓰지 않으면 나중에 쓰기 어려울 것 같아 없는 시간에 급하게 쓰다보니 앞뒤가 안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조만간에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