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노동조합이라... 예전부터 늘 생각해봤던 이슈인데, 좀 근본적인 이유로 들어가자면, 첫번째는 디자인계는 노동조합이 생기기에 본질적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합니다. 무형의 서비스는 원자재나 원료가 들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개념이 애매합니다. 따라서, 과잉경쟁에 의한 단가 혹은 근무조건에 대해 스스로 포기하는것에 관대하다는 것 입니다. 예를들면, 스스로 개인의 발전을 위해, 생계를 위해 추가근무를 하거나, 단가를 낮추고, 혹은 급료를 낮춰가며 경쟁에서 이기려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조업이라면, 손해를 보며 절대 제품을 팔진 않겠죠, 하지만 무형의 자산은 손해라고 느껴지지 않고 일종의 열정 혹은 투자라는 개념으로 인식되어지면서, 쉽게 타협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과잉경쟁을 유발하고,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이 무언가 열정있고 사람다운 의지가 있어보인다는 왜곡된(혹은 진실일지도...)평가가 이어집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개인의 희생을 조직이 통제할수도 없는 것이며, 자발적인 희생을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노동조합이 생긴다고 해도, 누군가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조합의 뜻에 반하는 개별행동을 하기 시작할 것이고, 고용주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값싸고 충성심있는 인적자원을 얻을 수 있기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조직을 결성하거나 그에 동참하는 행동을 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90년대 중후반이후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나치게 많은 디자인 학과들이 생겨났고, 짧은 기간동안 엄청난 인력을 시장으로 공급했습니다. 따라서 자연히 디자인단가를 낮아지고, 과잉경쟁이 생겼으며,  생존을 위해 스스로의 가치를 절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회적으로 지적재산권 혹은 무형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아직까지 늘어난 공급문제를 해결하기엔 시간이 덜 흐른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셋째, 디자이너고용주의 착취에 대한 부분입니다. 자신이 디자이너인 대표가 있습니다. 이 대표는 시장이 형성하고 있는 고용조건이상 더 많은 혜택을 직원들에게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월급이 높아지고 직원수가 늘 수록 자신의 이익은 줄어드는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장이 이미 형성하고있는 고용조건을 내새워도 언제든 회사문을 두드릴 구직자들은 줄을 서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용주 스스로가 철학을 가지고 회사의 고용조건을 개선하려는 의지와 희생이 있지 않은 한, 태양이 작렬하는 사막에서 부하직원에게 물한방울 더 나눠줄 용기와 의지는 없습니다.

좀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위해 직원들에게 투자하고 근무 환경을 개선해줬다고 가정해봅니다. 만약 그 회사가 정말 뛰어난 크리에이티브를 가지고있고, 대단한 비젼이 있고, 매년 오르는 연봉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면, 직원은 충성심을 가지고 회사에 자신의 열정을 바칠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경우 회사의 배려는 배신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조건 혹은 비젼을 위해 얼마든지 퇴사할 직원들 앞에선 말이죠.
잦은 이직은 회사 오너로 하여금 직원에 대한 투자와 신뢰를 잃게 합니다.
그리고 투자할 가치가 없는 자원에 투자할 바보는 없겠죠. 안타깝지만 현실입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로 보여지기도 하네요.
서구권과 달리 디자인의 감성을 인식하기엔 너무나 배고픈 시절을 겪었던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의 가치가 인정되는데는 오랜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디자인계의 문제를 조합이 해결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위의 글에도 언급했듯이 스스로가 가치를 높이 여기고 타협하지 않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지적재산에 대한 가치와 정당한 권리를 스스로가 요구할 때 변화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일종의 운동(movement)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사회적 운동이나 캠패인을 통해 알리고 스스로 동참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릴것이라 예상되어지네요.

개인적으로는, 디자인업체에 디자인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방향으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저 혼자만의 노력일지는 모르지만, 그들에게 인식하게 하고, 스스로 느끼게 해줌으로써 점차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것이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몇가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계약된 견적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은적도 한번 있고, 클라이언트가 스스로 디자인의 중요성에대해 깨닫고 관행을 깨는 선택을 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변화들이 시작이라고 봅니다.

예전에, 본의아니게 디자인에 문외한인 기획자를 앉혀놓고 즉석에서 디자인 과정을 보여주며 함께 디자인 한 적이 있었습니다. 며칠 뒤 그 과정을 함께한 기획자는 디자인 과정의 중요함과 가치, 디자인이란 과정이 지니는 섬세하고 복잡하며 까다로운 과정을 경험하고, 많은 생각들이 달라졌다고 제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상호 납득과 설득의 과정은, 서로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문외한 이라고 치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들안에는 좋은 디자인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디자인적 감성을 지닌 기획자였을수도 있지만, 이러한 시도들에서 전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건 거창한게 아닙니다. 마음가짐과 관점 하나에서 시작됩니다.